일주일, 감기는 사라진 듯 하지만 아직도 목에 낀 불쾌함이 남았다. 감기기운이 남아서 그런가. 두 아이도 나와 상태가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럭저럭 큰 소동은 없어 다행이었다.
모처럼 한적한 거실에서 캐럴을 틀었다. 기분을 내보려고 하는데, 눈앞에 아침해가 황금빛 광선을 쏟아주는대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이 무겁기도 한데, 작년 과는 다른 집안 분위기에 좀 놀랐다. 12월이지만 다른 날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낸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시들해졌다. 산타 선물을 얼마나 기다렸던 아이들인데, 벌써 시들해지니 내 나이가 훅하고 느껴졌다. 큰 아이와 학교 얘기를 하다가 친구 엄마와 내가 나이차이가 열 살이라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물론 내가 더 많은 나이의 엄마기 때문이다.
간식 챙겨주는 스타일도 좀 다르다 싶었는데, 나보다 그렇게나 젊은 엄마였다니 말이다. 아이도 어딘지 모르게 놀란 얼굴이었다. 십 년 전엔 둘째를 겨우 낳았는데, 나는 첫아이도 노산이었다.산부인과 진료에 가면 나보다 나이가 젊어 보이는 산모들을 보며 걱정을 하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큰 아이가 내 나이를 여러 번 묻더니 씩 웃고 가버렸다.
매사에 너무 시 큰 퉁 해지는 큰 아이가 오늘따라 신경이 쓰였다. 점점 알아가는 것이 많아지면 어른이 되어 가는 걸까?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허전해서 작은 조명 등을 샀는데, 올해는 이 마저도 잠깐 보고 그만이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감흥이 없으니 섭섭할 뿐이다.
큰 아이는 기말고사가 골치가 아프고, 둘째는 반 아이들 중에 누가 같은 반이 될지 골치가 아픈 모양이다.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 선물은 안 중에 없다.
이만하면 된 걸까?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지 않은 다니 말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만 돼도 시들해진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런가 보다. 그래도 나는 선물을 챙겨주던 시절이 벌써 그리운 듯 아련해졌다.
마트에서 크리스마스 한정판 젤리 큰 통을 샀다. 어려서는 아예 사줄 생각도 안 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충동구매를 했다.
젤리 통을 보자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 학교 가는 길에 두 개씩 들고 가고, 집에 와서도 한 두 봉지 들고 다닌다. 작은 봉지에 열개 남짓 작은 젤리가 들었는데, 작은 종, 트리 장식, 눈사람, 진저맨, 별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작은 젤리 하나씩 입에 넣으면서 학교에서 있던 이야기를 해주니 나쁘지 않다.
산타 할아버지 선물은 시들해졌지만 달콤한 간식은 환영이라니, 섭섭했던 마음이 안심되었다. 크리스마스까지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집안에 작고 귀여운 젤리 빈 봉투가 낙엽처럼 뒹굴어 다닌다.
때가 되면 기분 내는 간식도 해줄 걸 싶다가도 남들 먹는 걸 꼭 먹어야 싶기도 했다. 그때는 그 나름대로 아이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겠지 하며 웃어넘긴다.
삶에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돌아보는 여유를 갖고 싶다. 느긋함이 게으름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데리고 오는 것이라면 좋겠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뉘엿뉘엿 고개가 넘어간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추억은 또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