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피었는지 모를 동백꽃은 완벽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왜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동백나무가 꽃봉오리를 꽉 물고 찬바람을 견디며 더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줄 알았다. 나란히 동백나무 세 그루가 있는 화단은 흥미롭지 않을 거라 단정했었다.
꽃이 지지 않은 남쪽에서 온 꽃소식은 올해도 비슷했다.
지난주에 수선화가 피었고, 동백꽃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피었다가 대부분 시들어가는 듯했다. 제주의 꽃소식은 향긋했지만, 내가 머무는 곳은 한 겨울이다.
집 안 베란다 상자에서 겨우 버티고 있던 토마토 모종은 냉해를 입었고, 대파도 고개를 숙여버렸다. 늦가을까지 있던 대부분의 화분이 거실로 피난을 왔다.
겨우 몸을 녹인 듯 한 화초들이 정신이 들었는지 거실은 초록 기운이 주는 신선함을 느낄 만큼 멀쩡해졌다. 하지만 바깥은 며칠 동안 한파가 무섭게 떨게 만들었으니 멀쩡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은 사철 푸른 상록수가 다일 듯 싶었다. 함박눈이 소복하게 쌓인 풍경에서 꽃을 기대하는 것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볼거리가 없는 바깥 풍경을 눈 부시게 만든 함박눈이 반가웠다. 아무도 밟지 않은 백지처럼 하얀 풍경을 보고 싶었다. 눈이 더 많은 곳을 따라 걸었는데 날 놀리듯 동백나무가 꽃을 내보인 것이다.
어쩜, 서울에도 동백꽃이 피었구나!
동지가 불러온 추위에 어쩔 수 없이 얼어버렸지만 내 눈에 띄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이른 꽃을 발견하는 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벌어진다. 발견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내가 한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한 송이 동백은 겹겹이 펼쳐놓은 꽃잎은 더 이상 붉지 않았다. 냉해로 얼어버린 꽃을 보며 한탄을 했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붉은빛 동백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감사하게도 동백나무는 첫 꽃을 떨어뜨리지 않고 날 기다려주었으니 운이 좋은 발견인 셈이다.
2023.12.26
활짝 핀 동백꽃이 눈을 맞아도 제주에선 냉해를 입지 않는다. 금방 포근해진 기온에 동백꽃은 끝가지 힘을 내기 때문이다. 눈을 뒤집어쓴 꽃은 제주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꼭 닮은 모습이었다.
동백나무의 첫 꽃은 가장 최고점이었다. 모험이라는 것은 실패의 두려움을 버릴 때 완성 된다. 대부분의 두려움은 시작 단계에서 나를 가로막았다. 미루다 보면 걱정과 불안이 완전히 잠식해서 시작의 설렘조차 앗아가 버렸다. 조금 늦게 피었다면 내리는 눈과 영하의 한파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의 겨울은 매섭기에 12월 동백꽃이 피는 건 무리였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이 두려워 종종 숨고 싶지만, 자연에서는 더 가혹했다.
늦겨울에 피기 시작하던 동백나무는 벌써 이른 첫 꽃을 피웠다.
첫 꽃은 의미가 있었다. 처음 핀 그 용기에서 자연의 힘을 닮고 싶어졌다. 어쩌면 잃어버린 인생을 찾는 길은 야무지게 피어난 동백꽃처럼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나였다.
동백나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환경이 그러할 뿐이니까. 얼어붙은 동백꽃을 보고만 있는데도, 동백나무의 부드러운 온기가 담긴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내게 시작도 끝도 좋을 거라고 암시를 하듯 눈앞에 나타났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그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자연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내 이야기도 야무지게 완성할 방법을 찾을 듯 우쭐해졌다.
시들면 '툭'하고 꽃을 통째로 떨어뜨리는 동백나무는 완벽한 끝맺음을 할 줄 안다. 내 곁에 더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에 꽃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