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멋진 해방감

작은 틈에

by 무쌍

전기 포트에 물을 또 끓였다.

집안일을 하다가 잊어버렸다. 탁에 올려져 있는 머그잔을 발견했을 땐 포트에 물을 다 식어버렸고, 물이 끓을 사이 찬장 구석에 있는 블랙커피 봉투 하나를 꺼냈다. 수육을 삶거나 돼지고기 요리를 할 때 쓰는 용도로 사 온 커피인데, 요즘은 커피로 마시는 일이 많아졌다.


커피 쓴 냄새를 맡으니 책이 보고 싶어졌다. 오래된 책들이 있는 도서관 생각이 간절해졌다. 시계를 보니 지금 부지런히 가면 한 시간은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듯싶었다.



오늘은 곧장 도서관 제일 끝 서가로 들어갔다.

신간도서도 아니고 에세이 코너도 아닌 오래전에 이미 떠난 작가의 작품이 모여있는 고전문학 코너에서 서성였다. 책을 펼쳐 들고 읽어 내려가는데, 소설 속 풍경을 찾아내지 않고 인물들이 지내는 곳이 어느 시대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분명한 건 스마트폰은 없던 시절의 책들이었다. 직접 만나지 않으면 편지를 주고받거나, 누군가의 말을 대신 전해 듣는 일이 익숙했던 시대였다. 물론 전화를 걸 수도 있었지만 엽서나 편지를 보내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이 보였다. 오래전 작가들의 책들만 있다고 믿었는데, 그들과 비교하면 너무도 젊은 작가의 작품이 그 틈에 있었다니.


노르웨이 숲을 펼쳤다가 시간은 한참 현재로 돌아와 버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의 책은 다시 서가에 꽂어두었지만, 그 책을 읽었던 스무 살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직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 길가에 놓인 공중전화박스를 찾아 전화를 걸었던 날이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방송 채널 버튼을 누르듯 서가의 소설책을 마구 펼쳤다. 계속해서 소설은 더 과거로 먼 나라로 나를 데려갔다. 우편배달 마차가 오가는 시절의 길고 긴 기다림은 길고 긴 오해를 만들어 놓은 듯했지만, 우편마차가 오가는 길을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을 읽었다.


갑자기 조용한 무반주 음악이 들렸다. 고른 책은 고작 3권뿐인데, 대출할 책을 더 찾을 시간은 없었다. 벌써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5분 남짓 남은 시간이었다. 대출할 책을 들고 줄을 선 사람들 틈에 섰다.

집에서 나와 한 시간 남짓 도서관으로 훌쩍 떠난 여행은 정말 멋진 해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 얼마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을 읽었는데 - 필사를 해둔 하루키의 문장이 생각났다.



책을 읽는 습관이 일단 몸에 배면 - 그런 습관은 많은 경우 젊은 시절에 몸에 배는 것인데 - 그럼 쉽사리 독서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가까이에 유튜브가 있건 비디오게임이 있건 틈만 나면(혹은 틈이 나지 않더라도) 자신해서 책을 손에 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스무 명에 한 명이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책이나 소설의 미래에 대해 내가 심각하게 염려할 일은 없습니다. 전자책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얘기도 현재로서는 굳이 염려하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글쓰기 주변을 어슬렁 것은 책을 읽은 일이 너무도 습관이 되어서 생긴 후유증은 아닐까 싶다. 책을 들고 있으면 읽거나, 다 읽고 난 후거나 비슷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바로 일종의 해방감이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불러오는 용기의 해방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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