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여러 겹의 겨울 문장들

좋아해요

by 무쌍

책을 읽고 나면 책에 대해서 떠들고 싶어 안달이 난다.

참기 어려운 날은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 잡고 어리둥절하게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서 곱씹어보기를 즐긴다.

예전에 만나던 책 친구들도 입이 무거웠다. 책을 덮은 채 골방에 들어가 책장을 넘기거나 사색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했으니까 말이다.


곱씹어보기는 수다로 떠드는 것보다 수선을 떨듯이 노트에 적어두는 것이 장 좋다. 속지가 누렇게 바랜 책을 도서관 책 소독기에 꽂았다. 소독기에서 꺼낸 책을 살피다 보니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기도 했겠지만 책의 초판 발행일이 출간된 지 스무 해가 되었다. 원작 소설은 1913년도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라세 출판사에서 <1편 스완네 집 쪽으로>를 자비 출판했으니 책은 110년 전부터 시작된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또 읽는 동안 프루스트가 한 세밀한 쓰기 무엇인지 궁금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 많은 단어들을 종이 위에 써내려 갈 때 건강하지 못한 몸이었는데,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을 반복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곤 했다.




스무 해 전 책을 좋아하던 그녀를 만났다.

직장은 늘 야근이 많았고, 토요일 근무까지 해야 하니 초과 근무는 일상이었지만 하얀 피부를 한 그녀의 입가엔 늘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녀가 내 책상에 놓인 책을 보더니 먼저 물었다.

"책 좋아하세요?" 그 뒤로 우리는 아주 사적인 관계가 되었다.


같은 층에 근무하지 않아서 매일 마주 지치 못했지만, 마주치기 하면 "어떤 책 읽으세요?"라고 묻고 책 이름을 알려주길 기다렸다가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안부는 이런 식이었다.

진도가 술술 잘 나가는 책인지, 잘 읽히지 않아 모험을 하는 중인지, 혹은 몇 번째 읽고 있는지, 각자 읽고 있는 책에 관한 근황이었다. 문체니, 구성이니, 작가가 누군지가 아니라 '독서' 행위에 대한 근황을 묻는 일이었다. 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책을 읽는 서로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책을 회사에 들고 다닌 건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퇴근 길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녀를 알게 되고는 더욱더 책을 손에서 더 놓지 않았던 것 같다. 1년 넘게 그녀와의 책 인사를 하던 어느 날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1권을 다 읽고 난 뒤였고 나는 처음 그 책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상중이라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마침 그녀의 근무계약은 끝이 났고, 출근하고 나니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걸 동료에게 전해 들었고, 책 외에 다른 일상을 공유한 적이 없어서 다른 직원들 보다도 개인 적인 상황을 알지 못했다. 도서관 서가에 가장 오래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표지를 보는 순간 그녀가 들고 있던 책도 같았다는 걸 어렴풋이 기억났다. 책 친구였던 그녀를 프루스트의 책과 함께 저장되어 있었나 보다.




나는 거의 닫혀 있는 덧창 사이로 간신히 노란 날갯짓을 하는 오후의 햇살을 물리치면서 투명하고 연약한 신선함과 노니는 내 방의 침대에 누워, 한 손에 책을 들고 구석 한 켠에 자리 잡고 앉은 나비처럼 꼼짝 않고 숲과 유리창 사이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나는 마치 잃어버렸던 아버지 품에 안기듯, 작가가 쓴 문장에 믿음이 가고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났다.
이렇듯 엄마가 콩프레에서 나에게 목청 높이 읽어 주었던 이 책은 그날 밤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책은 한 번만 읽지 못한다. 한 번에 해내지 못하기도 하지만, 완독을 하지 않아도 집중해서 읽게 되는 페이지를 찾으면 다행히 그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을 완독 했을 거라 믿는다. 아니 여러 번 읽고 또 읽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식과 거짓으로 겹겹이 도배된 뉴스를 보니, 진실함은 소설책 속에서 찾아야 할 것 같은 즘이다.

안부를 묻던 책 친구가 궁금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빌려왔다. 다시 펼친 책에서 눈에 띄는 문장을 발견하고 작가의 말이 상냥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남은 겨울을 문장들과 더 지내려고 한다. '좋아'라는 곱씹어보기를 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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