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를 준비한다고 했는데, 버터와 닭고기를 빠뜨렸다. 점심에 만든 카레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미뤄야 했다. 큰 아이가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마트에서 남은 재료를 사 왔다.이제 카레를 만들기만 하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오후에 둘째가 기침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삼일을 감기 걸린 아이들과 씨름하다가 닭고기의 소비기간 마지막날이 되었다. 닭가슴살을 냉동실로 옮기긴 했지만 제때 카레를 만들지 못해서 속상했다. 아니 먹고 싶었다.
아이들은 일주일 남짓 감기약을 먹고 건강해졌다.
다 끝이 났나 싶었는데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침을 삼키기 어렵게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 진료를 하고 처방받은 감기약은 지독하게 쓰고 독했다. 식후에 약을 먹었지만 속이 거북할 정도였다. 머릿속에선 카레 생각이 간절했는데, 막상 아프고 나니 입맛도 도망가버렸다.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하지만 미뤄두었던 카레를 만들었다. 매콤하게 먹고 나면 몸이 가쁜해질 것도 같았다. 향이 강한 카레였지만 감기에 걸린 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며칠은 카레 덕을 보았는데, 정작 나는 맛도 향도 한번 느껴보지 못했다. 내가 감기가 걸린 사이 카레가 담긴 냄비는 텅 비었지만 나는 카레맛을 보지 못했다.
급식 메뉴처럼 미리 만들어 두면 식사 준비가 편해질까 싶다가도 늘 즉흥적이다. 메뉴가 만장일치로 정해지는 날도 있고,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가 결정하기도 했다. 밑반찬도 하루 정도는 신선하지만 날짜가 뒤로 갈수록 김치 취급을 받는다.
나는 스파게티를 먹고 싶은데, 남편은 김치찌개를 해달라고 한다. 김밥이 먹고 싶은데, 갈비를 만들어 달라고 아이가 조른다.
"먹고 싶은 반찬 있어?"
"점심에 뭐 먹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매번 가족들에게 묻는다. 메뉴를 정하지 못해서 그럴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원하는 식사를 해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요즘은 묻지 않는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만들어 놓고 "오늘은 카레야!"라고 말하는 편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적응이 안 되는지 다른 반찬은 없냐고 묻는다.
달력을 보니 방학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밥상 차리는 일을 너무 열심히 했나 보다. 자꾸만 '엄마가 주는 대로 먹어!' 소리를 하고 싶어 진다.
설거지도 패싱 할 휴가가 필요한 타이밍이다.
달콤한 휴가의 즐거움은 순식간이고 예상에 없던 외식 비용이 추가되었다. 가족들과 점심을 사 먹고 나니 내게도 여유가 생겼다. 글을 써놓고 보니 벌써 저녁식사 시간이다.
저녁 식사 때문에 아찔했지만 금방 웃음이 났다. 며칠 전 미역국을 잔뜩 해놓은 것을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