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내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길 바라는가

마음 가면

by 무쌍

개학식을 마치고 온 아이는 가방에서 통신문을 꺼냈다.

물론 알리미 앱으로 보내는 일이 당연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새로 작성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가족 사항을 확인하고 학교 외에 아이의 일과 공유하고 개인 정보 제공 동의를 받기 위함이었다.

나는 이 작업을 일종의 ' 내 아이가 어떤 한 해를 보냈으면 하는가'라는 주문서처럼 느껴졌다. 매년 선생님의 질문은 똑같지 않았지만 부모의 기대와 학교생활에 거는 기대를 문답식으로 나마 파악하려는 지처럼 느꼈다.

기대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 아이의 장단점을 적어내기 때문에 장점은 더 잘했으면, 단점은 좀 보완되었으면 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올 해는 작년보다는 2장이 더 늘었고, 서술형보다는 칸을 채우거나 보기가 있는 질문도 많았다. 진단지처럼 체크해 내려가는데 신기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키득 웃음부터 나왔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그때 다르지만 '-했니?', ' 그만해라.', '조용해!' 주로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는 말들이다. 그래도 나는 '사랑해'라는 말은 하루에 여러 번 건넨다 싶었는데, 막상 '사랑해'라는 말을 답으로 쓰려니 죄책감이 들었다. 래서 다 쓰고 말았다.


글쓰기보다 어려운 것이 학년 초에 오는 가정통신문에 오는 회신용 문서들이다. 그래도 지난 한 해 아이가 성장해 온 날을 떠올리며 천천히 곱씹고 시간을 할애해서 빼곡하게 적어 보냈다. 숙제는 늘 까다롭지만 끝내면 시원하다. ^^;




육아서도 아닌 심리학 책에서 육아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읽던 <마음 가면>이란 책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육아에 관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며 우리가 세상에 어떻게 참여하느냐를 봐야 한다.
<마음 가면>

이 사회가 '네가 부족해서 그래' 문화 속에서 부모 노릇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넘쳐나는 육아 지침서는 도서관 서가에도 잔뜩 꽂혀있다. 유행하는 육아 관련 도서가 나오면 찾아 읽어 보기도 했고, 사지 못한 것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다. 하지만 육아서들이 내게 맞지는 않았다. 잠시 불안증을 없애주기도 했지만, 나에게 없는 결핍도 인정해야 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나의 취약성을 발견하다 보니 그나마 있는 작은 자신감도 숨어버렸다. 엄마는 참 어렵다.


때때로 육아법이나 이론을 선택해서 방법 대로 하면 금방 좋은 엄마가 될 듯도 했다. 어쩌면 육아서의 방법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었다는 기분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마음 가면>의 저자는 육아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육아란 본래 수치심과 비판의 지뢰밭이다. 부모는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불확실성과 자기 의심을 해치며 나아간다. 스스로의 결정에 자신이 있을 때 우리는 독선적인 비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있다고 자신한다면, 다른 부모가 유기농이 아닌 우유를 아이들에게 먹인다고 해서 수치심에 물들어 눈을 부라리다 제풀에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결핍이 있는지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부모로 취약성을 갖는다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신에게 부모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묻는 대신에


" 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지금의 나와 같은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


라고 바꾸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뭐든 해주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한다. 정말 신기했다. 대가 없이 뭔가를 해주어도 아깝기는커녕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적어도 내 경우는 말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참 이런 과거는 좀 잊어버리고 싶은데 참 오래 떨어지지 않는다.

선물이 없더라도 미역국이나 생일 케이크 둘 중에 하나만 있다면 아마도 생일상이 맞을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한 부모 가족도 아니었다. 집에서 생일상이란 말은 없었다. 가족 누구도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유치원을 다닌 동생들은 형편이 나았다. 유치원에서는 매달 생일인 아이들을 모아서 잔치를 해주는데 해마다 사진을 찍어 집으로 보내주었다. 물과 함께였다.


나는 곧바로 학교를 다녔으니 그런 사진도 없는 생일 무경험자다. 하지만 지금은 새 달력일 걸릴 때면 미리 가족들의 생일에 동그라미를 치고, 특히나 '엄마 생일'은 공식적인 나의 휴가로 지정했다. 난 생일날 집안일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자유를 만끽한다. 결혼을 하고 온 가족의 생일은 정말 중요한 날이라는 걸 새로 배웠다.

나는 아이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처음부터 그러진 못했다. 나도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처지가 아니어서 인지 '사랑해'라는 말은 시시하게 치부했었다. 다 아는 말을 매일 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아이들에게 줄 수는 없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하고 학습하는 여정을 아이들과 공유하자.


책에 쓰여 있는 그대로 아이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였다. 내가 비난받으면 아이도 비난받는 것과 같았다. 나를 사랑하면 아이도 사랑받아야 마땅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아이를 동일시한다기보다는 '마음 가면'이 씌워진 나를 계속 인정하지 않았음을 각성하는 것이 먼저였다.



세상에 나쁜 부모는 있다. 하지만 좋은 부모는 잘 모르겠다. 좋은 역할이 무엇인지 참 애매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아이가 하고 싶은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재력을 갖은 부모? 건강상에 질병 없이 신체와 정신이 온전한 유전자를 물려주는 부모? 사랑과 인자함으로 언제든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는 부모? 잔소리를 안 하는 부모?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무엇이 진정으로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인지 헷갈린다.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인 듯싶다. 엄마의 결핍을 아이에게 똑같이 심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뒤에는 수치심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취약성을 감추느라 마음 가면을 쓰고 있었는지도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나쁜 부모는 되지 말자.

내가 기억하는 나쁜 부모의 모습을 지우는 방법은 그걸 따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내가 한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소속감이 충분히 느껴지는지가 중요하다. 가족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생각은 아이를 비참하고 쓸쓸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부모가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것, 부모의 부응에 따라가지 못함을 느끼는 것, 둘 다 아이에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런 어린 시절을 겪어 보았으니 말이다.


오늘도 그럭저럭 나쁜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도 그럭저럭 나를 나쁘지 않은 엄마로 믿고 따라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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