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 투어 Day 3 : 타직과 키르기스인이 평화롭게 같이 사는 곳.
우린 그냥 같이 살아요...
그런데, 사귀거나 결혼은 안해요...
게스트하우스 앞...
짧은 여름날의 햇볕을 즐기던 주인장 투르선바이는,
원한다면 마을을 같이 돌며 소개해 준다고 한다.
배낭여행을 하는 입장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방문한 장소가 품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공부하고 가지 않으면,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보이는 많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다. 물론, 여행지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그곳에서 뭔가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나와는 다른 그들의 삶 자체가 너무 궁금하여...여행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를 "다른 삶의 체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다.
여행 후, 책이나 TV를 통해 내가 뭔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너무 아쉽고, 괴롭다. 그래서, 특정 장소에서는 가이드 투어도 하지만, 가이드에 따라 퀄리티가 천차만별이라...시간 낭비, 돈 낭비인 경우도 많이 생긴다.
투르선바이는 파미르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고...전문 가이드는 아니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외국 관광객도 많이 상대해 본,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현지인 가이드'였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마을을 하나 하나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기대처럼...난 재밋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된다.
특히, 사람과 종교, 가옥 구조에 대해...
동네 입구에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에게 우물은 단순히 물을 얻는 곳을 넘어, 척박한 초원과 사막에서 생존과 직결된 신성한 곳이다. 그래서,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닌, 유목민 공동의 자산으로 인식되며, 이는 외지인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인지, 투르는 우물을 가리키며, 외부인들이 물을 얻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우리같은 관광객들은 차에 생수를 충분히 넣고 다녀서 우물이 필요 없지만,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곳이라 한다.
마을이 크지 않다보니,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아는 듯 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인사하는 방식이나 태도, 특히 투르가 어떤 사람들과는 인사도 잘 안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투르는 이 곳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 준다.
여기에는 키르기스인(Kyrgyz)이 많아요...
전 파미르인(Tajik)이고요.
우리는 같이 살아요. 조금은 다르게요.
이곳을 오기 전에 들른 무르갑 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중앙아시아 각 나라 간의 현재 국경이, 전통적인 민족 중심으로 나뉘어 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르갑 참조: https://brunch.co.kr/@mussmuss/102)
투르는 이곳 역시 키르기스족 중심으로, 파미르계 타지크족(Pamiri Tajik)이 거주하고 있고, 자신들을 보통 타지크인이 아닌 파미르인으로 부른다고 한다. 즉, 이 곳은 키르기스인과 타지크인이 같이 사는 동네다.
보통 키르기스족은 유목/목축 전통을 가진 반면, 타지크족은 농업/가축사육을 하는데, 여기 같은 척박한 고원지대에서는 농사가 불가능해, 두 민족 모두 목축업에 의존한다.
두 민족은 종교에서도 다른 점을 보인다. 전통적으로 키르기스족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고, 이곳 사람들 역시 수니파이다. 그런데, 파미르 타지크족은 주로 수니파를 믿는 타지키스탄의 다른 지역과 달리, 이슬람교 중 이스마일계열 시아파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이곳 알리추르 마을에는 타지크족의 시아파와 키르기스족의 수니파 이슬람 교도들이 같이 산다.
다행히, 두 민족은 다른 종교에 매우 포용적이라 분쟁은 없다고 한다. 다만, 서로 사귀거나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 한다. 내가 질문을 계속하자, 투르는 “이 동네에 이렇게 관심 많은 사람은 처음”이라며, 나를 데리고 두 민족이 사는 경계 부근으로 간다. 거기서, 손으로 양 쪽의 집들을 가리킨다.
어때? 집들이 좀...차이가 보여?
난 처음에는 솔직히 별 차이를 못 느꼈다. 다만, 마침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보이는 키르기스 집들이 좀더 신식같아 보였다. 그러자, 투르는 두 민족의 집이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우선, 파미르인, 즉 타지크인 집은 지붕이 평평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울어진 지붕이 없다.
척박한 지역에 걸맞게 두터운 흙벽이 있고, 평평한 지붕 중앙에는 빛과 연기가 통하는 둥근 구멍이 있다. 이런 전통 가옥 '치드(Chid)’는 단순한 집이 아니라, 종교적 상징성(조로아스터교)을 담고 있어서, 이스마일파 신자들에게는 일상생활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예배 장소의 역할을 한다. 특히, 지역에 별도의 모스크가 없던 시절에는 일종의 모스크 역할을 해온 공간이라고 한다.
반면에, 원래 유목 민족이었던 키르기스족은 유르트가 전통 거주지 였지만, 알리추르와 같은 정착촌에서는 주로 돌로 지은 일반적인 형태, 즉 우리가 생각하는 삼각형 형태의 지붕이 있는 집에 산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그랬다. 키르기스인 지역에는 지붕이 뾰족한 집들 뿐이고, 타지크인 쪽에는 지붕이 평평한 집만 보였다. 너무나 신기했다. 보통 집의 형태는 그 지역의 기후에 큰 영향을 받아서, 예를 들어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은 지붕을 더욱 경사지고 뾰족하게 만들어 눈이 잘 흘러 내려가게 한다든지 하는데, 이곳은 종교가 가옥의 형태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너무 놀라웠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거주민이 그냥 걸어가면서 보이는 것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을 하나하나 툭툭 뱉어주니, 오히려 귀에도 쏙쏙 들어오고 너무 좋았다. 이제는 형제가 된 투르선바이 덕분에, 최소한 알리추르 마을에 대해서는 내가 여행 가이드를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느꼈던 시간이었다.
마을에는 새로 지은 모스크도 있었고, 관공서와 병원도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의 빽빽한 건물들과는 달리, 띄엄띄엄 있다보니 어떻게 보면 드넓은 초원 위에서 많이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란 하늘과 그 주변을 둘러 싼 높은 산들이 이 건물들과 마을을 따뜻하게 감싸 주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학교를 갔다.
안타깝게도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창문 안으로 보이는 학교와 교실은...무척이나 정감이 갔다.
아마도 오래전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때 봐 왔던 난로가 교실 한 가운데에 똑같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듯 하다. 다만, 우리 어린 시절에는 한 반에 65명 이상씩...콩나무 시루라고 불릴 만큼 많은 학생들이 교실을 꽉 매운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지금 이곳에는 학생 한 명 없이 텅 빈 교실에...책상과 의자마저도 없어서 매우 쓸쓸해 보였다. 옆 교실에도 의자 하나만...
이곳 아이들이 수업 받는 모습을 진심 보고 싶었다.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상상도 해 본다.
한국에 있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자녀에게, 혹은 중앙아시아와 같은 곳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싶어서, 얼마전 '한국어 교원 자격증'도 땄는데...여기서 교실 안을 보고 있으니, 그 날이 기대가 됐다.
창문을 통해 오랫동안 교실을 보다가...
가이드 투르와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숙소 주인장 모드로 돌아온 투르는...괜히 마을 구경 한번 시켜준다고 했다가, 너무 오랫동안 돌아 다녀 후회하는 모습이었다...나 한테 질문도 엄청 받고...
My Bro 투르야...오늘 일은 잊지 않으마...고맙다!
그리고 담에 내가 여기 다시 와서...
너 대신 외국인 상대로 동네 가이드 한번 해주마.
건강해라, 애 잘키우고...(참고로, 이 놈 만 20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