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 투어 Day 4 : 정든 마을을 떠나며...
파미르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곳...
그러나, 가장 슬펐던 날...
이 마을에는 꼭 다시 올거야.
아이들과 같이 자매가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고,
초원에서 축구도 다시 한판 뜨러...
나는 여행 계획을 매우 타이트하게 세우는 편이다. 누구와, 어떤 장소에 가는지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내가 경험하고 싶었던 것은 물론이고, 관심이 크지 않은 장소나 분야에 대해서도 일단 그곳에 있다면 최대한 많이 보려고 한다. 그렇다. 나와 같은 여행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아주 많다. 편히 쉬고, 맛있는 것 먹고, Relax 하러 가는 분들에게, 나는 최악의 여행 파트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나의 빡빡히 짜여진 여행은 종종 위기를 맞기도 한다. 그 중 가장 큰 위기는 기대치가 낮은 곳이었는데, 가보니 너무 좋아서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 또는 현지에서 계획에 없던 엄청난 장소를 발견했을 때다.
아, 여기는 꼭 가봐야 하는데 어떡하지?...
둘 중에 어디를 포기해야 하지?
이런 고민에 빠졌을 때, 항상 나에게 최면을 걸 듯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도 많이 했는데, 그것은 “뭔가 남겨 둬야 다음에 또 올 수 있다 (Let’s leave it for next time)”이다.
난 지금까지 약 60여 개국을 여행했지만 여전히 가보고 싶은 나라가 많아서, 보통 가본 곳은 여행지 선정 시 우선순위에서 빠지게 된다. 특히 내 성향상, 어떤 장소가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 좋았던 경험을 다시 느끼러 가기 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커서...다시 갈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꼭 해보고 싶었던 것,
해야 할 것을 남겨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즉, 다른 곳을 가더라도 경로를 우겨 짜내서, 잠시라도 들를 기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듯 뭔가를 남겨 둔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파미르고원 4일 차,
무함마드가 아침 일찍부터 출발을 서두른다.
그 동안은 매일 새롭게 만날 또 다른 파미르를 기대하며
즐겁게 하루를 시작했지만, 오늘은 너무나 슬펐다...
오늘도 고속도로 아이들과 같이 걸어야 했고,
유르트 안에서 아이스크림 자매와 수다를 떨어야 했다.
밥먹고 나서 꼭 축구 한 게임 더 하자던 나의 Bro들...
어제 못 지킨 약속을 오늘은 지켜야만 했다.
학교에서 떠들며 웃음 짓는 아이들을 봐야 했고,
대화를 못해 본 키르기스 사람들도 만나봐야 했다.
알리추르 마을은 어릴 적 고향인 듯 나를 잡았다.
그리고, 오늘은...오랜 만에 내려 온 고향을 등지고,
다시 서울로 가야 하는 날이다.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은지,
어제 함께 한 티아고와 피오나도 똑같은 말을 한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아...오늘은 정말 “다음 번을 위해 뭔가를 남긴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른 아침 출발이라, 아이들 얼굴도 다시 보지 못한 채 차를 탔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면 아이들을 볼 수 있겠지”라고 되뇌지만, 오늘은 이동 내내 파미르의 자연이 잘 보이지 않는다.
[ 파미르 투어 Day 3 :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 ]
어제 하루를 되돌아 보니...
뭔가...장르가 다른 몇 편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무르갑은 안타까운 역사 영화,
아크발릭 샘과 눈표범은 자연 다큐 영화,
고속도로 아이들과 아이스크림 자매는 따뜻한 가족 영화,
공터의 축구 선수들은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그런 다양한 영화에 내가 출연한 느낌이다.
한 영화가 끝나면, 마치 와인 소물리에가 다음 와인을 테이스팅하기 위해 입을 씻듯...잠시 시간을 두고, 공간을 이동해 다른 영화에 들어가는...뭐, 그런 하루같다. 어찌보면 긴 하루였지만, 단 하나의 영화도 완결을 못 한 채로 끝난 듯하다...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이 감정만은 오래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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