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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SMUSS Nov 11. 2017

폴란드 3]
소금광산, 생지옥을 경험하다

폴란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Wieliczka Salt Mines]


3. 폴란드의 자랑 "소금광산"에서의  참극



“한 100층짜리 건물 걸어서 올라가 본 적 있으세요?”
예쁘지는 않았으나, 착하게 생긴 소금광산 매표소 직원은 나에게 되도 않는 질문부터 하였다. 
 "우휴...아니 이런 도라이..." 오렌지족 시대를 거친 나...아니 누가 100층을 걸어 올라간단 말인가? 

그러나, 그 착하게 생긴 여인은 정말 우리를 위해 착한 질문을 나름 착하게 해 준 것이었다. 후배가 무조건 가야 한다는, “폴란드의 자랑, 아름다움의 향연”이라던 소금광산...

그곳에서 우리 부부는 15kg짜리 물기품은 왕소금을 잘 굴러가지도 않는 녹슨 폐광 수레로 옮기는 비운의 광부가 된다. 왕소금에 비유해 미안하다, 다후야...허나, 너는 당시 만 1세 아이의 평균 몸무게보다 무려 40%나 더 나가는, 몸무게 상위 3%, 15kg 초대형 우량아였다. 특히, 소금광산 안에서 대부분 자고 있던 너로 인해, 우리는 바퀴까지 빵구나서 심지어 잘 구르지도 않는 꼬진 유모차를, 마치 석탄을 나르는 녹슨 수레처럼 광산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야 했다...

사실 너를 그곳에 놓고 나오려고...
그만하자...
 


우선,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하면, 앞서 말한 착한 소금광산 여직원처럼, 동유럽 사람들은 서유럽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수하며, 독일인은 이태리나 스페인 사람에 비해 "정직"한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태리나 스페인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고 마쁘다는 뜻은 아니다. 성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스페인 친구들의 과장은 정말이지...)


얼마 전 독일에서, 그것도 대도시가 아닌 슈투트가르트 인근의 작은 마을인 Esslingen am Neckar의 한 레스토랑에서 친구와 내가 피자를 시켰더니, 여직원이 대뜸...


"너희들 정말 그거 못 먹는다. 우리 집 피자 진짜 크다. 하나만 시켜라"


하는 여자 직원의 말을 안 믿은 나는 아래 사진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즉...사람은 믿어야 한다"라는 교훈을 우리는 잊어선 안된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합성 같은 것은 못한다. 원근은 있겠지만 합성 아니다...진짜다...




어쨌든, 그 날의 시작은 이러하다...

계절 변화와 "특히 꽃이 언제 피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무지하지만 (폴란드 1편 참조), 나름 의리와 친절로 무장한 후배 근호는 우리 가족을 위해 아침 일찍 호텔로 마중을 나왔으며, 혹시 모를 까 봐 (혹시 내가 크라쿠프에 안 가고 다시 런던으로 도망갈까 봐) 친히 크라쿠프 기차표까지 준비하였다. “형, 어제와 오늘 알코올 농도 70도짜리 보드카를 매일 한 병씩 먹어, 숙취에 서있기도 힘든 형을 위해 지정석을 끊었어...아침부터 침대칸을 타긴 형 채면에 쫌 그렇잖아...”라는 매우 논리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아이까지 있는 사람에게 3시간이 넘는 거리는 서서 가는 입석표 사서 보내는 후레자식은 보통 없지 않은가? 물론, 여기까지는 생각조차 못했을 그 후배는 2살 이하는 공짜라는 설명과 함께 나와 와이프의 기차표 2장을 움켜 주었다.   


정말 고맙다 근호야.

"개나리는 없었지만, 대신 알코올 70%의 폴란드 보드카가 있었고, 이제 니가 말한 소금광산행 기차표도 있으니...나는 마음이 든든하다"라는 말을 전하려 했으나...오바이트가 그 말마저 막은 아침의 일이다.

 

기차 좌석은 근호 말대로 6명이 함께 가는 컴파트먼트 석 (침대칸이 아니라, 양쪽에 3칸의 자리가 마주 보고 있는 좌석)이었다. 이틀 간의 폭음으로, 만취의 연속이었던 나는 제발 옆자리에 사람이 안 앉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도를 하였다. 특히, 우리는 공짜인 다후 좌석을 따로 안 끊었기 때문에, 혹시나 자리가 꽉 차면 다후를 무릎에 앉혀서 몇 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은 운이 좋았기에, 거의 모든 여행에서 좌석을 끊지 않은 다후가 한자리를 꽤차 앉았기에 이번에도 기대를 했다. 하지만,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 앞 좌석 2개는 이미 젊은 여자와 할아버지와 같은 아저씨가 탔고, 서양 사람의 특징처럼, 처음 보는 데도 엄청 친한 듯, 마치 10년 만에 만난 부녀지간처럼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자아, 이제 남은 것은 바로 복도 쪽 두 자리...제발 내 옆에 사람이 앉지 않기를...

 

그렇다. 결국, 내 옆자리에 사람은 앉지 않았다. 
대신, 사람보다 큰 개가 앉았다. 그 젊은 여자는 자기보다 큰 개를 타고 탔으며, 
심지어 개를 위해 기차표를 끊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매우 예의 바르게, 우리에게 개가 같이 타도 되냐고 물었고, 우리 모두는 (사실, 나도 개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다만, 그날은 계속 오바이트를 하고 싶은 분위기였을 뿐) 환한 미소로 오케이를 했다.   


다후야 미안하다...물어보니 저 개도 이제 2살, 너와 동갑인데, 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 만의 자리가 있구나. 이 담에 아빠가 여유가 생기면, 너 자리도 꼭 돈 내고 끊어 주마...일단은 저 표 있는 개에 좀 기대가라...그리고,


"아빠, 난 개보다 못한 X이야?"라는 질문은 하지 말아줘라

  

개와 함께 한 3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은 매우 행복했다. 다후보다 2배는 더 컸던 그 개는 무엇보다 엉덩이마저 컸기에 기차 칸 안에서 어른 두 명이 앉을 정도의 공간을 차지했고, 덕분에 숙취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기차 복도에 쓰러져서 병든 닭처럼 잘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살아 움직이는 모든 사물을 좋아하는 다후는 그 큰 개와 서로의 침 (타액)을 맞교환하며 매우 즐거운 3시간을 보냈다. 같이 복도에 나온 다후와 저 개를 보라……얼마나 행복해 보이는가? 이런 게 인생이다...

  

개만 생각해도 행복한 다후...뒤에서 그 걸 지켜보는 큰 개


이렇게 도착한 크라쿠프에도 역시 근호가 자랑한 만개한 개나리는 없었고, 차디찬 겨울바람만이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시가 광장 근처의 조그만 빌라를 빌린 우리 가족은 시내 구경을 시작했다. 크라쿠프는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500여 년간 폴란드의 수도였던 도시답게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 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수도가 바르샤바로 이동한 덕분에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아 멋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구시가지 전체가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는 지를 한눈에 짐작하게 할 정도로 예뻤다. 구시가지 광장 앞에는 많은 노점이 들어서서 다후와 와이프를 즐겁게 했고, 직물 회관 안의 많은 상점 역시, 기념품과 폴란드 특산물인 그릇을 팔고 있었다. 체코 프라하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유명하지만, 이 곳 크라쿠프 구시가 역시 매우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했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시장에서의 쇼핑에 빠지다...
 모양 빠지게 코가 빨개진 다후...


대망의 이튿날, 바보 후배 근호가 가르쳐준 소금광산으로의 일정을 짰다. 근호 말로는 소금광산이야말로 폴란드 넘버 1 관광지로, 무조건 가야 하는 명소라고 침을 엄청 튀기며 자랑하였다. 여행 책에도 “아마 유럽을 관광하는 중에 가장 특이한 경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소금광산을 표현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런 신기한 경험을 좋아하는 나와 와이프는 들뜬 마음으로 빌라를 나섰다. 어린 다후를 유모차에 싣고, 편한 택시가 아닌 시외버스를 타고 소금광산을 갔다. 버스 안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소한 얼굴의 동양 아기를 보고 너무너무 귀여워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해서, 그분들과 즐거운 대화를 하며 소금광산으로 향했다. 와이프 말로는, 요즘 서울에서 모르는 아이를 쓰다듬거나, 귀엽다고 만지면, 바로 신고를 한다거나, 아이 부모가 어르신들이고 뭐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고 하는데, 이렇게 세상이 각박해진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시골스러운 곳에서 사람 냄새를 느끼면 사는 게 나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잘 아는 이웃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온 듯, 지루하지 않게 소금광산에 도착했다.

“형, 무조건 형수랑 아이 데리고 소금광산부터 가요!!!”라는 근호의 외침이 아직도 생생했고, 영하 20도의 날씨에, 우리 말고도 많은 관광객이 있음에 기대감도 더욱더 고조되었다.


그러나, 매표소에 다다라 이런 흥겨운 분위기는 날씨와 같이 급 냉각된다. 매표소에는 두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우리에게 대뜸 누가 들어갈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뭐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지? 눈 앞에 세 명이 떡 하니 있는데... 바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으나, 현실은 얼굴에 급 미소를 지으며 “pardon?”이라고 적절히 응대했다. 그리고, “Two adults, and one baby of 1 year old”라는 유창한 영어로 그들을 압박했다. 그러자, 그들은 나의 질문에 대답을 미룬 채, 둘 만의 격렬한 논쟁에 들어간다. 요지는...

  

아이를 데리고 저기에 들어갔다가는 제대로 못 나온다...

"아이 놔두고 한 명만 들어가던지, 교대로 들어가라"라는 소심파와, "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힘들어도 아기 데리고 들어가라"는 대범파가 우리를 앞에 두고, 100분 토론을 능가하는 논쟁을 벌인 것이다. 대범하기로 유명한 내가 “나는 하루에 100리를 가는 사람이니 염려 마라”라는 명쾌한 말로 소심파를 설득해 표를 샀으나, 그 소심한 놈은 끝까지 나에게..."아이를 데려가면 지옥을 맛볼 것이다" 느니, “너 100층짜리 건물 걸어서 올라가 봤냐?”라는 의미심장하고도 기분 더러운 말을 늘어놓았다.  


내려갈 때는 유모차가 더 힘들게 느껴진다...

  

이렇게 시작한 “근호의 추천작” 소금광산 투어……  

단순한 동굴이 아니라, 처음 들어가면서부터 그 규모에 놀랐고, 영어 가이드로부터 소금광산의 전설인 폴란드 왕자와 헝가리 공주의 결혼 이야기를 들으며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전설의 모티브가 되는 킹카 성당과 수많은 아름다운 소금조각들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기도..........아주 잠시...........

약 30여 분이 지난 후부터는 소금이고 나발이고, 우리 부부는 관절염과의 사투만을 벌이게 된다. 다후의 몸무게는 약 15Kg...마침 다후가 자고 있어서 유모차까지 들고 들어갔던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800여 계단이었다. 그 티켓 파는 소심파 직원의 말대로, 평지까지 하면 정말 100층짜리 건물에 오르는 것과 같은 정도의 오르락내리락 난코스였다. 물론, 3월 개나리 만개설을 주장하며, 폴란드 제 1 관광지라 무조건 소금광산을 추천한 근호는 이런 정보를 주지는 않았다. 우리가 눈 앞에 바로 서 있어도, 그리고 그곳에 몇 번을 가봤어도, 그의 뇌는 전혀 작동을 안 한 것이다. 나와 와이프는 다후와 유모차를 서로 바꿔 들며, 약 3시간 동안 15kg짜리 스쿼드를 800회 시행하였고, 마침내 실제로 광부들이 사용하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지상으로 나왔을 때는,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수년간의 계획 끝에 지하수로를 통해 탈옥을 성공한 직후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깬 다후,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
뭐 이런 정리안된 길도 있었고...
아름다운 장관을 절대 볼 수 없게 한 무한 계단...해서, 소금 대성당 등 이쁜 사진은 안 올린다. 사실 없다. 왕소금(다후)을 녹슨 수레(유모차)에 싣고 간 기억뿐...



소금광산에서의 계단 오르기로 인해 나와 와이프의 체력은 거의 고갈 직전이 되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크라쿠프 구시가는 정말 우리가 상상 속으로 생각하는 중세의 유럽의 이미지 그대로였기에 그 피로마저도 씻어주었다. 해가 지기 전의 늦은 오후에 보는 구시가의 광경은 첫날밤에 도착하여 본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우리에게 주었는데, 특히 직물 회관 바로 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젯밤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성 마리아 성당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두 개의 첨탑이 서로 다른 높이를 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불균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고, 중세 르네상스 형식의 성당이어서 인지 몰라도, 체코의 프라하 시내에서 본 여러 건물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또, 매 시 정각이 되면 울리는 나팔소리는 다른 유럽 도시의 성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종소리와는 달리 왠지 서글픈 느낌을 주는 것이 겨울 날씨에 딱 어울렸다. 흔치 않은 이 나팔소리에 대하여 Information에 물어보니, 사실 이것은 예전에 적이었던 타타르족이 공격했을 때에 감시병이 침략을 알리기 위해 불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타타르족이 이를 막기 위해 나팔수에게 화살을 날렸고, 그 화살이 나팔수 목을 관통하여 나팔소리가 중간에 그대로 멈추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지금도 나팔 연주가 중간까지만 연주된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그 연주가 중간까지만 연주되었는지도 몰랐으나, 그 서글픈 나팔소리는 봄의 시작을 막는 이 추운 날씨와 슬픈 전설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성 마리아 성당의 바로 앞이자, 구시가의 중심인 직물 회관 역시 매우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안에는 수많은 작은 상점에서, 여행 기념품이나 폴란드상 그릇들 (한국 여자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는, 그리고 지금까지 언제 썼는지 모르는 그릇들을 마구 모으는 내 와이프에게도 큰 흥밋거리였고)을 진열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이 직물 거래를 위해 만들어진 회관은 14세기에 만들어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이라고 한다. 지금은 국력이 많이 약해졌으나, 거대한 바비칸과 8개의 성, 구시가지 끝에 위치한 바벨성이나 이 직물 회관을 통해 당시 폴란드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소금광산에서의 계단 오르기로 인해 우리 가족은 체력 보충이 필요했고,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고기 레스토랑을 찾았고, 나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와이프와 아이를 호텔에 남겨둔 채, 다음 날 예정된 아우슈비츠 Day tour를 예약하기 위해 크라쿠프 구시가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바비칸 성벽과 그 바로 앞 플로리안 게이트 쪽으로 갔다. 플로리안 문은 성벽을 둘러싼 전체 8개의 문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문으로서, 1300년 대에 건축한 것 치고는 매우 잘 보존이 되어있었다. 플로리안 문을 통해 그대로 쭉 들어오면 구시가의 중심인 직물 회관과 성 마리아 성당이 나온다. 어쨌든, 이 문의 주변에는 여러 개의 조그만 여행사들이 있고, 거기서 아우슈비츠 Day tour를 예약할 수 있다. 바로 다음 날 투어였지만, 추운 날씨 덕분인지 우리는 원하는 시간에 예약할 수 있었다.


기대된다, 아우슈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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