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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 Apr 07. 2021

별 생각 없던 30년,
별 생각하는 3년

지금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이다. 횟수로 30년이 넘는다. 버스정류장도 아파트 이름이라 등하굣길에 출퇴근길에 아침 저녁으로 들으며 자랐다. 매일 같은 풍경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고 있다. 아파트 벽 페인트 색깔이 몇 번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에는 지하실에 짐을 보관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곳은 사용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쥐가 많이 보였다.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쓰레기를 그냥 버렸다. 분리수거가 생기기 전이다. 베란다에 작은 철문을 열면 쓰레기가 밑으로 떨어졌다. 분리수거가 생기면서 그 문은 제거되고 마감처리가 됐다. 그런 것이 있었는지 흔적조차 없다. 쥐가 없어지면서 고양이 울음소리도 줄었다.

20년을 한 직장에 다녔다. 대표는 같았고, 회사 상호가 변경되고 몇 번을 이사했다. 처음에 입사했을 때는 직원이 10명이었는데, 퇴사할 때는 200명이 넘었다. 직원 수로만 본다면 20배 성장이다. 매출로 계산한다면 더 크다. 과연 나는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20배의 급여 인상과 그만큼의 성장이 있었을까.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매일 3시간씩 훈련하면 10년이 걸리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8시간 회사에서 일했다. 시간대비 노력대비 어찌 된 일인지 그냥저냥 살고 있다. 딱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월급만큼 노력한 삶이었다. 어쨌든 난 전문가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의 실세도 아니었고, 전문가도 아닌 애매한 직장인으로 끊어질 듯 말 듯한 급여 줄을 붙잡고 살다가 결국 끊어졌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구본형 작가는 ‘직장인은 죽었다’는 말을 했다. 뭔가 죽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인 듯하다. 니체는 인간 정신을 3단계로 변신한다고 봤다. 처음은 맹목적으로 복종하면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낙타, 누구의 명령도 거부하고 자유를 갈망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자, 마지막으로 사자처럼 으르렁거리지 않고 세상과 놀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말했다. 난 낙타였다. 무거운 짐을 짊어져도 불평불만 없이 뜨거운 사막을 묵묵하게 걸어갔다. 주인이 밥 주면 주는 대로, 쉬라고 하면 쉬는 대로 수동적이며 복종적인 낙타와 비슷했다. 점점 왜 출근해야 하는지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냥 맡겨진 일만 성실하게 했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퇴사하고 나서 제일 후회 된 것이 바로 나의 생각을 말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답이 정해져 있었다. '굳이 말해서 뭐해. 아치피 안될텐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분위기도 조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어딜가나 마찬가지였다. 말하지 않으면 암묵적 동의다. 난 그렇게 동의하고는 속으로 호박씨만 까고 있었다. 정작 말할 기회를 주면 감정이 앞서고 눈물이 먼저 났다. 20년 말이 없었던 이유는 별 생각이 없어서였다. 그저, 알아서 다 해결되겠지라는 마음이 컸다. 30년 이곳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생각'을 하면서 나이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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