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투어를 꿈꿉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저를 자주 칭찬해 주셨어요.
우리 딸이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는 자부심이 있으셨는지 제게도, 주변 지인들에게도 자주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우리 나영작이는 책을 참 좋아해.”
직접적인 칭찬도 좋았지만 지나가면서 슬쩍 듣는 칭찬은 슬며시 웃음이 날 만큼 기뻤던 것 같아요.
칭찬에 부응하려고 책을 읽는 척하며 엄마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낀 기억도 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은 만화 ‘캔디’ 예요.
30권까지 있었나? 꽤 길었던 만화를 친구 집에서 열심히 빌려다 주인공 풀네임까지 외우면서 읽었죠.
테리우스 그란체스터, 아치볼트 콘웰…
친구의 집은 2층이었는데 거실의 전면이 책이었던 집이었어요.
요즘에야 ‘거실 서재화’를 많이들 실천하지만 그 당시에는 좀 드문 집이었던 것 같아요.
4층 저희 집에서 2층 친구집을 내 집처럼 뻔질나게 드나들며 자체 대출, 반납을 했어요.
친구의 집은 제게 최초의 도서관이었어요.
학교 도서관을 가거나 공공도서관을 다녔던 기억은 거의 없어요.
대신 친구집, 친척집을 가면 책장 안의 책들이 너무 궁금해 꺼내봤어요.
저희 집에는 없었던 컬러백과는 그야말로 네이버처럼 저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너무 매력적인 책이었어요.
글밥 많은 어른들의 책을 보며 취향을 짐작해 보기도 했고요.
어린 시절 엄마의 칭찬은 ‘책은 읽는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큼 멋진 행위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전 책을 읽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20대의 저에게 도서관은 읽는 공간은 아니었고 머물며 공부하는 공간이었어요.
20대는 혼돈의 시기였어요.
전공을 바꾸기도 했고, 연하 남자친구의 라이프 스타일 따라가느라 정체성이 모호하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큰 결정들을 무심코 해버린 기억들도 많아요.
좋은 만남이 있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20대는.
지역 중심지에 ‘중앙 도서관’이라는 곳이 있어요.
지금은 이름도 바뀌고 리모델링해서 엄청 쾌적해졌지만 그땐 많은 인원이 오밀조밀 자료실에 모여서 공부하던 공간이었어요.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앉아서 민간 독서실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 공간은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었죠.
맨 아래층에 식당이 있어서 최소한의 동선으로 공부하기 좋았어요.
거기서 저는 전공을 바꾸기 직전의 시간을 보냈는데 도서관 자료실이 주는 ‘전우애’로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외롭지 않게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전공을 바꾸고, 나이 많은 동기언니가 되어서는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유아교육을 배우며 어린 시절의 나와 부모님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고, 미래의 내 가정과 아이도 꿈꿀 수 있었죠.
그렇게 매일 수업이 시작하기 두 시간 전쯤 가서 도서관에 앉아 전공서적을 읽었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내적 충만함을 느꼈죠.
졸업 후의 시간은 녹록지 않았어요.
유아 교사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었고, 제게는 잉여시간이 없었죠.
오랫동안 도서관을 갈 수 없었어요.
요즘엔 초등학생 아이와 도서관을 가요.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는 아이를 보며 네게도 이 공간이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도서관은 제게 성장과 치유의 공간인 것 같아요.
성장하는 시기엔 꼭 함께 했었던 공간, 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공간이요.
아이를 핑계로 자주 도서관에 가서 비비적거려봅니다.
전국의 도서관 리스트를 모으고 있어요. 언젠가는 한 번씩 방문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