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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장인

by 겨자풀 식탁

나는 눈사람을 잘 만드는 편이다.



포슬거리는 눈이 내리는 장면만 봐도 야구공만 한 눈 정도는 그 자리에서 만들 수 있다. 소복하게 쌓인 눈밭에서는 5분 안에 내 키의 반 정도 되는 눈사람도 만든다. 눈이 쌓여있는데 계속 눈이 내리는 상태라면 금상첨화다. 아마도 내 몸보다도 큰 눈사람을 크고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나는 눈개비만 봐도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이다. 생각 속에서, 마음속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를 화아아알짝 펴고 'what if'라는 눈사람을 수시로 만들어 전시한다. 생육하고 번성한 눈사람 가족은 어느새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너, 정말 할 수 있겠어? 괜찮겠어?"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할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새로운 만남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나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나 기대치를 생각 속에서 눈덩이처럼 불린다. 산만큼 커져버린 눈덩이 앞에서 나 혼자 압도된다.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고,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쏟고, 과도하게 나 자신을 점검하고, 결과물을 야박하게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일을 해도 남들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니까 '누구나' 그럴 거라 생각했던 부담감의 무게에, 어쩌면 내가 더 많은 중량을 추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올 한 해를 뒤돌아보니 비로소 깨달아진 내 모습이다. 적어도 석 달은 지나야 그 무게가 평균치로 돌아온다. '아, 이 정도만 하면 되는 걸 뭐 그렇게 무겁게 이고 지고 혼자 난리였지?' 매번 그랬다. 마음으로 아무리 '오버하지 말자' 해도,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은 결국 외부세계를 향한 과도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가볍게, 숨 고르고, 한 번에 하나만 생각하기. 그걸 매일 반복한다. 여전히 가벼워질 줄 모르는 불신과 염려의 무게추를 들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도. 어떻게 하면 가벼워지는 건지.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 내 경험치가 쌓이면 자연스레 덜어내는 것 밖에는.



언젠가는 멈추겠지, 제멋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눈사람 가족도. 나 자신을 향한 불신에도 완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날.


#겨자풀식탁이야기

#기록중독자의일상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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