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망' 열차, 다음역에서 하차합니다

유해한 관계의 종착역은 바뀌지 않습니다

by 겨자풀 식탁


저는 꽤 심각한 길치입니다.


환승역에서 급하게 지하철을 갈아탈 때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탈 때가 왕왕 있습니다. 꼭 한 두 정거장 지난 후에야 깨닫고는 다시 내려 원래 가려던 방향 열차로 갈아타곤 했습니다. 배우자가 유해한 학대자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인생 길치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잘못된 열차를 타고 집에서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걸 깨달은 순간, 내가 타고 있는 열차의 종착역이 '이생망'역이라 느꼈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이 열차 안에서 내가 최선을 다하면, 종착역이 바뀔지도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이따금 열차 창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스쳐 지나갈 때면, 내 삶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스스로 위로할 때도 있었습니다. 열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열차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좌절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아무도 모르니 내가 노력만 하면 여전히 종착지를 바꿀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언 20년을 그 열차 안에 머물렀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열차에서 내릴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혼자서 열차를 갈아타는 것과 아이들을 데리고 열차를 갈아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이들은 자기 선택으로 이 열차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섬광처럼 뒤통수를 내리쳤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저 때문에 '이생망'행 열차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랬듯, 남들이 보지 못하니 괜찮다 생각하며 열차 속 현실에 자포자기하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습니다. 제가 그랬듯,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꽤 그럴싸한 날도 있으니, 자기들의 삶도 괜찮다 스스로 속이지는 않을까 무서웠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열차를 잘못 탔다면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리십시오.
내리는 역이 멀어질수록 되돌아가는 운임료를 더 많이 지불해야 합니다."

이 격언은 일본 철도요금 안내서에 적힌 구절에서 유래한 현대 격언이라고 합니다. "내릴 역이 멀어질수록 운임이 비싸짐"이라는 구절에서 "잘못된 선택에서 빠져나올 때는 한시라도 빨리 행동해야 불이익을 줄인다"라는 교훈을 찾아낸 거죠. 결국 저는 이 격언이 주는 교훈처럼, 아이들과 함께 '이생망'행 열차에서 내리는 선택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유해한 배우자와 함께 사는 분들과 종종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꽤 많은 분들이 "아이들도 있는데 이제 어쩔 수 없다. 이혼이 답도 아니고"라는 말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백분 이해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내가 선택한 배우자와 함께하는 이 결혼 생활을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감 있게 완주하고 싶었고, 결혼 전 내가 믿었던 배우자의 모습을 끝까지 믿어주며 함께 노력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열차에서 내리는 수고와 그 이후의 고된 삶(이혼이라는 험난한 과정과 그 이후 받게 될 낙인)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열차의 종착역을 바꾸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가 지불해야 할 값만 더 커졌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학대 대상을 '영구 구속' 하려는 유해한 학대자는, 상대 배우자가 자신을 떠나는 일이 점점 더 어렵고 불가능하도록 교묘하게 작업을 합니다. 그 결과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저는 경제력을 잃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결국, 매일 반복되는 악몽 같은 현실 속에, 의지할 곳도, 자력으로 일어날 힘도 없이, 매 순간 자책하고 좌절하며 '나 자신' 마저 잃어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유해한 학대자는 자신이 운행하는 '이생망'행 열차 외에는 어떤 열차도 없는 곳, 학대 대상의 '자아'마저 소멸되는 곳을 향해 내달립니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가족을 학대합니다. 아주 가끔씩 창밖으로 예쁜 풍경을 보여 주거나, 적당한 곳에서 잠시 멈추고 소풍을 즐기며 안심시킵니다. 열차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신기루 같은 잠깐의 행복을 맛보게 해 줍니다. 좌절하는 자신마저 의심하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유해한 학대자의 '영구 구속' 먹잇감이 된 '이생망' 종착역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열차의 종착역이 바뀌지 않는다는 현실을 빨리 인정할수록 지불해야 할 대가가 줄어듭니다.


종착역을 바꿀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빨리 버릴수록,
나와 아이들의 희생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종착역을 바꾸려는 노력과 맞바꾼 내 삶의 가치와 기회들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성장 과정에서
아이들이 무력하게 학대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유해한 배우자와 함께 사는 분들은 모두 서둘러 이혼하세요!"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혼을 택하든, 별거를 택하든, 불편한 동거를 택하든, 모두 본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종착역을 바꾸려는 노력 대신, 종착역이 바뀌지 않는다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바뀔 수 있는 종착역이었다면, 내가 노력할수록 관계가 악화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내가 용서할수록 학대가 심해지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내가 기회를 줄수록 아이들까지 더 힘들어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유해한 학대자는 내가 무엇을 해도 바꿀 수 없는 사람입니다.
유해한 배우자의 잘못된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내 탓'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끝까지 감당하거나 해결해야 할 '내 몫'은 더더욱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과의 관계가 더 나아질까?"라는 질문 대신, "이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 아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전속력을 다해 쉬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뜀박질을 한다 해도,
열차의 종착지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 겨자풀 식탁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해한관계면역력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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