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라니, 과한 표현 아닌가요?

'학대'를 '학대'라고 정의할 때 찾아오는 자유

by 겨자풀 식탁


저는 올해로 ‘유해한 배우자(toxic spouse)’와 결혼한 지 19년 차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배우자의 언행이 ‘학대’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 것은 불과 3년 전입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학대 대상자의 대부분은 자신이 ‘학대’를 당한다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특히, 정서적 학대의 경우에는 더 그렇죠. 명백한 ‘물리적 상흔’을 남기는 ‘신체적 학대’가 아닌 이상, 우리는 ‘학대’라는 이름 붙이기를 조심스러워하고 꺼립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학대만이 ‘진정한 학대’일까요?




스테파니 사키스는 자신의 책 <상처받은 관계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Healing From Toxic Relationship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담자와 이야기를 하다 그들이 “학대”를 견뎌왔다고 지적하면 처음에는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학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가 꺼려질 수도 있다. ‘분노를 터뜨릴 때가 많지만, 그걸 학대로 부를 순 없어. 그저 서로 여러 면에서 충돌했을 뿐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내담자’의 생각은 바로 저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욱 하는 것뿐이야. 나도 같이 욱 해서 화를 냈는데. 나라고 어디 완벽한가? 서로 부족한 사람이다 보니 싸우고 부딪치며 사는 거지, 뭐’라는 생각이었죠.


게다가, 앞선 세대 어르신들의 예는 저의 이런 생각을 더 강화하는 이야기들 뿐이었습니다. 남편이 화를 내면 당연히 눈치를 보고 장단을 맞추며 살아야 한다 생각하는 어르신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 말하던 유명한 광고 멘트, 아내와 장인 장모는 사위의 눈치를 보고 시댁 눈치까지 봐야 하지만 남편과 시댁은 아내나 며느리뿐 아니라 친정까지 언제든 트집 잡고 흉볼 수 있는 가족 내의 위계적 관계는 ‘다들 그렇게 사는 당연한 현실’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온 제가 남편의 정서적 학대를 ‘학대’로 인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어찌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다수의 아내들, 그리고 어머니들이 같은 사고방식 속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학대’를 학대라고 인식 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참고 품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더 다뤄보도록 할게요).


다시 위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저자는 이어서 말합니다.


“학대 행동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학대를 때리고, 발로 차고, 뺨을 때리는 행위 같은 신체 폭력의 관점에서 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육체적인 폭력을 전혀 휘두르지 않아도 당신을 학대했을 수는 있다. 육체적 학대뿐 아니라, 성적, 재정적∙경제적, 언어적 혹은 정서적∙심리적 학대도 있다. 강압적인 통제라고도 불리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학대는 신체적인 학대만큼 해롭다.”


manipulator.png '강압적인 통제'는 모두 '학대'입니다 (이미지출처:Vectorstock)


우리는 '학대'라고 하면 흔히 물리적•신체적 폭력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보이는 '학대'는 주로 외적 상흔을 남기는 가시적인 폭력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성적, 재정적∙경제적, 언어적 혹은 정서적∙심리적 학대도 있다. 강압적인 통제라고도 불리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학대는 신체적인 학대만큼 해롭다.” 신체적인 학대처럼 눈에 보이는 상처를 남기지는 않지만, 성적, 재정적, 경제적, 언어적, 정서적, 심리적 학대도 모두 다 신체적 학대만큼 해롭다고 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쉬운 도표로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National Center on Domestic and Sexual Violence에서는 ‘권위와 통제의 수레바퀴(Power Control Wheel)’로 가시화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powercontrolwheel.png (출처: https://www.ncdsv.org/wheels-adapted-from-power-and-control-wheel-model.html)
권위와 통제의 수레바퀴.png '권위와 통제의 수레바퀴' (출처: 위와 동일)





위의 도표에서는 여러 종류의 학대를 꽤 자세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신체적 상해를 가하는 행위 외에도 언어, 정서, 재정, 등의 다양한 통로로 상대방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는 행위는 모두 다 ‘학대’에 해당합니다.




2년 전 즈음, 심리상담사를 통해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마음의 평정을 느꼈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배우자의 모든 언행들이 ‘학대’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도저히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모든 행동들을 ‘학대’라고 명명하는 순간, 마음속에 처음으로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배우자의 언행을 '학대’라고 정의하는 순간, 저는 더 이상 부당한 인내를 강요받아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윗 세대들의 합리화를 수용해야 할 이유도 사라졌습니다. 내가 부족하고 잘못한 것이 있어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비난할 까닭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학대’는 누구에게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학대’는 명백한 폭력이요 반드시 멈춰야 하는 행위니 까요.


‘학대’는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학대자의 '자의적 선택'입니다.


그 깨달음 이후, 비로소 저는 학대자의 폭력 대신 저 자신을 용서하기 시작했습니다. 학대자의 명예 대신 저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학대자의 상처를 헤아리는 대신, 스스로 외면했던 저의 상처와 아이들의 상처를 먼저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마음과 일상에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학대자의 학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들의 언행에 ‘학대’라는 정당한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들의 ‘학대’에 어떠한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경우에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가 없음을 스스로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이 글은 2025.01.17. 일에 저의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수정 보완하여 매거진으로 발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해한관계면역력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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