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한 학대자를 닮아가는 것 같아요
학대 피해자들이 자신이 경험하는 일을 ‘학대’라고 선뜻 정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 자신도 학대자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학대자가 소리 지르며 위협하는 행위가 언어적 학대라면,
내가 그 사람에게 같이 소리 지르며 싸웠던 행동도 학대 아닌가요?
학대자가 물건을 집어던진 행위가 정서적∙물리적 학대라면,
나도 같이 무언가를 집어던졌던 행동도 학대 아닌가요?
학대자가 나를 과도하게 비난하고 내 탓을 하는 것이 심리적 학대라면,
내가 그 사람을 탓하고 비난한 것 또한 학대 아닌가요?
저 또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유해한 배우자의 언행을 ‘학대’라고 쉽게 정의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배우자에게 소리 지른 적이 있고, 물건을 집어던진 적이 있고, 그 사람을 비난하고 몰아세운 적이 있으니까요. 그게 ‘학대’라면, 세상 모든 부부는 어느 정도 서로를 학대하며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학대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이런 행위들은 보편적인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것과 그 본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학대적 관계에 속한 이들이 보이는 이런 공격적인 언행들, 때로 학대자와 유사하게 보이는 행동들은 ‘반응적 학대(reactive abuse)’라고 부릅니다.
스테파니 사르키스는 <상처받은 관계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에서 ‘반응적 학대’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유해한 사람에게 맞서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몸싸움을 하거나, 몸으로 막아서는 등 그들과 똑같은 방법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나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에게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다.”
학대 경험자들은 학대자들의 행위에 맞서 소리를 지르거나 몸싸움을 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 이미 여러 가지 통로로 학대자와 더 나은 관계를 맺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 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 하고, 자신의 좌절감이나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간절히 부탁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이면 백, 그런 노력들은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계를 더 악화하고 학대자는 자신을 더 거세게 비난할 뿐이죠.
바로 그 지점에 이르면, 대다수의 학대 경험자들은 맞서 소리 지르거나 몸싸움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다소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스테파니 사르키스는 이에 대해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서적 학대를 포함해 가정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 상황을 끝내기 위해 유해한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그렇게 하면 유해한 사람이 학대를 중단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대화를 통해 상황을 해결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을 해도, 매번 좌절과 슬픔, 분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상대방을 때리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기에 위험하지 않은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를 벽에 박는 것과 같은 자해 행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악화되던 상황이 제가 그런 행동을 하고 나면 바로 중단되곤 했습니다. 제가 반응적 학대를 보이는 순간, 학대자는 자신의 행동을 멈추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상황은 정반대가 됩니다.
유해한 배우자는 반응적 학대 행동을 한 저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저는 죄책감을 느끼죠. 결국, 분명 배우자의 잘못된 언행에서 시작된 상황임에도 도리어 제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상황이 종결됩니다. 하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학대자인 배우자에게만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준 격이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든 제가 보였던 반응의 양태만을 놓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제가 극악무도한 폭력을 저지른 양 몰고 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응적 학대’의 효과입니다.
사실상, 제가 했던 행동은 엄밀한 의미에서 ‘학대’는 아닙니다. 그저 ‘반응’이죠. 물론 건강한 반응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학대할 의도’ 혹은 정서적이고 심리적으로 ‘착취할 의도’를 지닌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학대자들은 학대 경험자의 이런 ‘반응’을 오히려 ‘학대’라고 비난합니다.
이에 관해 스테파니 사르키스는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학대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한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는 걸 반응적 학대라고 부른다. 당신이 학대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도 학대하는 사람은 당신이 진짜 학대자고, 자신은 피해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위협을 당할 때 맞서는 행동은 방어의 한 형태이지 당신이 폭력적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반응적’ 학대는 ‘방어의 한 형태’ 일뿐, 학대를 경험하는 사람 자체가 폭력적인 기질 혹은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물론,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쉽사리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이 위협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몸싸움을 거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이를 구별할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학대자를 만나기 전 어떤 사람이었나요?
사람들과 잘 다투었나요?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고,
어디 가나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나요?
친한 친구라 해도 나와 의견이 다르면
말싸움을 하고 등 돌려 버리는 사람이었나요?
누군가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거나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때리는 시늉 혹은 위협을 하는 사람이었나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학대자와 다릅니다. 당신이 학대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더 졌을 수도 있습니다. 학대자에게 맞서다가 몸싸움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죽어버릴 거라고, 혹은 사라져 버릴 거라고 위협처럼 들리는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아닌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정신적∙심리적∙언어적 학대를 지속적으로 견뎌내면서 시종일관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반응적 학대’라고 해서 그런 행위들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대 경험자로서 진정한 치유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했던 모든 ‘반응적 학대’를 먼저 스스로 용서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학대자와 다릅니다. 당신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부당한 학대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건강한 소통 방식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면서 관계를 악화시킨 것은, 당신이 아니라 학대자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반응적 학대‘를 용서하고, 학대자의 ‘학대‘를 있는 그대로 ‘학대‘라고 인정하세요. 그래야만 ‘반응적 학대‘의 고리에서 벗어나 ‘주체적 자기 보호‘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25.01.17. 일에 저의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수정 보완하여 매거진으로 발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해한관계면역력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