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전히 너를 사랑해"라는 말

유해한 학대자의 사랑의 언어

by 겨자풀 식탁


유해한 배우자와 살면서 그 사람의 언행을 '학대'라고 쉬 정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사랑'입니다. 학대자는 결혼 전, 자신의 검은 속내를 철저하게 숨기고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의 언어'를 미리 파악합니다. 그리고 그 언어에 맞는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약속하고 속입니다. 상대방이 '이런 사랑은 처음 받아본다' 착각할 만큼 모든 것을 쏟아붓는 거죠. 전문가들은 이를 '러브바밍(Love bombing)'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마치 '폭탄'을 투하하듯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의 언어로 총력을 다해 애정공세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결혼을 하고 나면, 학대자는 서서히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고 당신을 탓할 겁니다. "당신이 말을 좀 더 부드럽게 했으면 내가 화낼 일이 없잖아. 나라고 화 내면 기분 좋은 줄 알아?"라며 자기감정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깁니다. 부부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하거나 기념일을 챙기려는 마음마저도 "당신은 항상 너무 많은 걸 바라.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늘 만족할 줄 모르잖아"라며 무겁고 부당한 짐처럼 여깁니다. 결혼 전에는 기꺼이 양보해 주었던 일에도 트집을 잡기 시작하고, 심지어 농담처럼 외모에 대한 품평을 하며 당신을 깎아내리기 시작합니다.


자녀가 생기고 나면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아이들에게 과하게 화를 낸 후에도, 심지어 아이들을 때린 후에도, 당신을 탓할 겁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며 당신을 탓하고, 아이가 잘못되는 걸 부모로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혼냈다고 합니다. 당신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잘 가르쳤다면, 자기가 화낼 일도, 아이를 때릴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유해한 학대자와 함께 사는 배우자는 대부분 자녀 돌봄 노동의 90프로 이상을 감당합니다. 그럼에도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내 아이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은 아무리 훌륭한 양육을 하는 부모라고 해도, 아니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일수록, 늘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죠. 유해한 배우자는 이를 역이용해서 상대방이 자녀양육의 의무는 물론이요 학대자의 잘못된 언행에 대한 죄책감까지 모두 다 지고 가도록 만듭니다.




이처럼 유해한 학대자는 결혼 전 폭탄처럼 퍼붓던 사랑의 언어들을 결혼과 함께 폐기처분합니다. 대신, 당신을 깎아내리고, 비난하며, 당신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말과 행동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기 시작합니다. 마치, 결혼 후 전혀 다른 사람과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보통의 부부라면, 서로 싸우고 부딪치면서 맞춰갑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갈등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부부로서 함께 성장해 가는 거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여전히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좋은 방편입니다. 하지만, 유해한 학대자와의 결혼 생활에서 갈등을 통한 '알아감'과 '자라감'은 불가능합니다. 학대자는 결혼 생활을 통해 배우자를 알아가고 함께 성숙해 가는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해한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사랑의 언어와 다릅니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이라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중 어느 것도 학대자의 사랑의 언어가 아닙니다. 라마니 더바슐라 박사는 학대자의 사랑의 언어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지배(Dominance)'입니다.


유해한 학대자에게 '사랑'은 곧 상대방에 대한 '지배'입니다 (이미지 출처:Depositphotos)


학대자의 사랑의 언어는 지배입니다.
- 라마니 더바슐라(Ramani Durvasula) -

학대자가 당신에게 '인정하는 말'이라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그 말을 통해 당신을 지배하기 원한다는 뜻입니다. 학대자가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시간을 마음대로 지배하기 원한다는 뜻입니다. 학대자가 당신에게 '선물'을 준다면, 선물을 받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미끼 삼아 학대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선물로 줘야 하는 '채무자'가 되었다 생각합니다. 학대자가 당신에게 '봉사'라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당신은 평생 학대자를 섬기는 '노예'가 되었다 생각합니다. 학대자가 당신에게 '스킨십'을 원한다면,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이 당신의 '지배자'임을 확인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모두 다 '지배'라는 학대자의 사랑의 언어를 극대화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학대자에게는 선물을 주는 행위와 상대방을 비난하는 행위가 다를 바 없습니다. 둘 다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행위와 아이들을 심하게 체벌하는 행위도 다를 바 없습니다. 둘 다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함께 동거 중인 유해한 배우자는 저에게 심하게 화를 내고 위협적인 욕설을 내뱉고 난 바로 다음날,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처음에는 화를 낸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며 다시 노력해 보겠다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저라면 그런 뜻으로 말했을 테니까요. 아니,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뜻으로 말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말을 믿고 화해를 하고 나면, 유해한 배우자는 어김없이 다시 화를 내며 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상대방을 위해 노력한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믿는 저는, 배우자의 행동이 과연 ‘사랑'인지 늘 의문이 들었습니다. 배우자가 하는 '사랑한다'라는 말에는 어떤 노력도 따라오지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사랑한다'라는 말로 화해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더 심한 언어적•정서적 폭행을 일삼았으니까요.


학대자의 사랑의 언어가 '지배(Dominance)'라는 라마디 더바슐라 박사님의 말은 유해한 배우자의 언행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은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지배하기 원해"라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니 배우자의 모든 행동이 설명 가능했습니다.
'사랑한다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라는 의문은
'지배하기 원하니 저렇게 행동하는구나'라는 통찰로 바뀌었습니다.
'사랑한다면 저런 말은 할 수 없지'라는 좌절은
'지배하기 원하니 서슴없이 저런 말도 내뱉는구나'라는 깨달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유해한 학대자와의 결혼생활을 '이생망' 열차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랑의 언어와 우리의 사랑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배'를 원하는 사람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전적 통제'를 원하는 사람과 '상호 성숙'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러브바밍(Love bombing)'이라는 지배의 언어를 사랑이라 믿고 속았다면, 지금이라도 그들의 사랑의 언어가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을 빙자한 '지배'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해한관계면역력밥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하는 행동도 학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