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한 관계 해방, 뭣이 중헌디?!

모로 가도 기어가도 서울만 가면 됩니다

by 겨자풀 식탁




당신은 '찍먹파'인가요, '부먹파'인가요? '슈붕파'인가요 '팥붕파'인가요? '민초파'인가요 '반민초파'인가요? 사람들은 똑같은 탕수육을 먹어도 각자 '맞는 방법'이라고 믿는 바가 다릅니다. 붕어빵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재료의 '근본'을 따지는 미식가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민트'를 '맛'으로 보느냐 '향'으로 보느냐를 놓고 초코와의 궁합을 따지다가, 친한 사이에 배신감마저 느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음식에 관해서라면, 최대한 교양 있게 양보해서 '개인의 취향' 문제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취향'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유해한 학대자'와의 관계입니다. 유해한 학대 전문가들의 90프로가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당장 떠나라!" 연애 중이면 당장 헤어지라고 합니다. 직장 상사라면 최대한 빨리 이직을 알아보라고 합니다. 배우자라면 지금 바로 이혼 준비를 시작하라고 합니다. 다른 해결책을 찾을 필요도 없고, 찾을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완전 손절'을 최고의 해결책으로 내세우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유해한 학대자가 변하는 경우는 매우 희박합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조언은 '당장'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더 비참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오히려 불가능한 선택이니까요. 차라리 학대자의 정체를 몰랐던 때가 나았다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학대자를 떠나지 않으면 진정한 치유는 불가능하다"라는 식의 말을 들으면 절망감은 더 커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라마니 더바슐라(Ramani Durvasula) 박사의 유튜브 영상 "DIfferent ways of LEAVING a narcissistic relationship"의 내용을 기초로 유해한 학대자를 떠나는 다양한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첫째, '완전 손절(노 콘택트: No Contact)'입니다.

말 그대로 유해한 학대자와 어떤 연락도, 왕래도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심지어 유해한 학대자와 함께 알던 사람들과의 절연까지도 감수하는 선택이라고 보면 됩니다. 주변인들에게 빈축을 사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는 선택이죠. 현실적으로 가장 깔끔한 방법이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합니다. 특히, 학대자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더 그렇죠. 부모가 유해한 학대자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요.


둘째, '최소한의 연락(로우 콘택트: Low Contact)'입니다.

유해한 상대방과의 관계는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연락이나 만남을 허용하는 경우입니다. 가족 간에 법적 의무 혹은 기타 다른 자발적인 이유로 '최소한의 연락' 혹은 '접촉'을 유지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가 끝났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위의 두 가지는 전문가들이 매우 흔하게 이야기하는 대응방식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은 셋째 형태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셋째, '어쩌다 손절' (물리적 거리만 멀어진 경우)

유해한 학대자와의 관계를 정의하지 않았는데 상황상 멀리 떨어져 있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사나 이직 등의 이유로 일상에서 서로 마주칠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에 살게 되는 거죠. 라마니 더바슐라 박사는 이러한 경우, 진정한 손절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유해한 학대자가 내 머릿속에 살고 있는 한 손절은 불가능합니다(이미지 출처:Depositphotos)


학대자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사람이 여전히 내 감정을 흔든다면 손절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유해한 학대자에게 문자가 오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그 사람이 했던 행동이나 말을 계속 곱씹으며 분노하고, 예측 불허 행동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여전히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는 '어쩌다 손절'에 대한 라마니 더바슐라 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과 사별한 후, 여전히 남편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옛날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드문 편입니다. 하지만 세대를 거슬러 올라 갈수록, 수시로 폭력과 폭언을 일삼던 남편 때문에 평생 힘들어하다가도 막상 사별한 후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에 잠겨있는 어머니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미운 정'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붙여 그 모습을 미화하기도 합니다. 물론, 배우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과거 학대의 심각성과 무게를 부인할 만큼 여전히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건강한 모습은 아닙니다. 어떤 아름다운 명칭을 붙인다 해도, 죽음마저도 갈라놓을 수 없는 '정신적 외상 유대감(trauma bonding)'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겁니다.



"학대자를 떠나지 않으면 진정한 치유는 불가능하다"라는 말은
'정신적 외상 유대감(trauma bonding)'을 끊어낼 때
비로소 참된 의미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찍먹이든 부먹이든 탕수육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슈붕이든 팥붕이든 잘 익은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며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민초든 반민초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함께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다면 친구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완전 손절'을 택하든, '최소한의 연락'을 택하든, '어쩌다 손절'을 택하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결국 같은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내 마음의 독립입니다. 우리는 종종 '떠남'을 물리적인 거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떠남은, 더 이상 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물리적 손절'이 아니라 '심리적 손절'이 본질입니다. 상대방이 소리를 질러도, 비난을 퍼부어도, 이제 더 이상 가슴이 요동치지 않을 때. 나를 비난하고 자신의 잘못을 떠넘겨도,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려도,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을 때. 그때가 진정한 '손절'의 순간입니다. 모로 가도 기어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절연을 하든, 만남의 의무방어를 하든, 일상에서 계속 만나든, '정신적 손절'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미운 정'으로 얽힌 마음, 즉, 정신적 외상 유대감에서 벗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1년, 어떤 이는 2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속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오래 걸린다고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과 자율성을 끝까지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유해한 학대 관계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자 '치유'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깨닫게 될 겁니다. '이제 그 사람과 나는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니다.'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해한관계면역력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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