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는 메모 독서법> 신정철

밑줄로 경계를 지운다

by 겨자풀 식탁


나는 책을 읽을 때 절대 밑줄을 긋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시 읽을 때 이미 표시된 문장만 훑어보고 중요한 부분을 놓칠까 봐서였다. 메모 독서법'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지만, 그때마다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읽기만 해도 벅찬데, 기록까지 해야 한다고?‘ 그나마 전자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뜨문뜨문 형광펜 기능을 사용한 게 전부였다.


그러다 몇 달 전, 독서 토론에 참여하면서 '메모 독서법' 경험담을 접할 수 있었다. 책 읽기에 진심인 분들이 추천하는 방법이라면,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리디 셀렉트에서 신정철의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는 메모 독서법>을 발견했다. 망설임 없이 내려받기를 한 후 바로 읽어 내려갔다.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신정철 (위즈덤하우스 2019)


가장 먼저 밑줄 그은 문장은 바로 밑줄 긋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밑줄 치기는 나 자신의 정체성과 성장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시 읽기를 할 때 밑줄을 쳐둔 문장을 보며 과거의 나와 만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내가 공감했던 문장들을 살펴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확인하는 것이죠."

밑줄 긋기는 소중한 나의 책들을 '더럽힌다'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나를 마주한다. 그리고 몇 년 후, 같은 책을 펼쳐 밑줄을 따라가며 변한 나를 발견한다. 밑줄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였다. 그동안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밑줄 하나 남기지 않았던 책들이 떠오르며 새삼 미안해졌다.


그럼에도 막상 밑줄을 긋고 독서 노트를 만들려니, 속삭이는 듯한 의심이 올라왔다. ‘이러면 시간이 너무 걸리지 않을까? 그 시간에 다른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을 텐데…’ 저자는 그런 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말했다.

"메모 독서는 한 사람을 깊이 알기 위해 시간을 충분히 들여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죠. 책 곳곳에 그은 밑줄, 책의 여백에 흘려 쓴 메모, 책 옆면에 무성하게 삐져나온 플래그, 독서 노트에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옮겨 적은 문장들...... 길들임의 시간은 흔적을 남깁니다. 이런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그 책과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메모 독서를 통해 한 권의 책이 비로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

책을 향한 이토록 황홀한 낭만이라니!


책과의 대화, 손끝에 남은 형광펜 자국, 여백을 채운 글씨들. 메모 독서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책을 살아 숨 쉬게 하는 마법이었다. 그 마법을 통해 내가 읽은 책과 진정한 친구가 된다. 내가 읽은 "한 권의 책이 비로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밤새 전화통화도 하고, 친구와 떠는 수다에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는데, 책이라고 다를까.



저자가 꾸준한 실천을 통해 체득한 '독서 노트 기록' 노하우, 함께 독서 노트를 작성한 분들의 흥미진진하고 생생한 경험담에 금세 빠져들었다. '독서'에 관한 책이었지만, 동시에 '글쓰기'에 관한 유익한 내용도 많았다. 다음은 이 책을 덮자마자 시작한 독서 노트에 내가 기록한 내용들이다.


"전문가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글을 써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사는 것" (슈테판 츠바이크)

글쓰기는 조각상을 만드는 작업이다. 곧 '나'라는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내가 꾸준히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쓰는 사람의 마음에는 물음표가 있다."
"작가란 결국 자신의 강박관념에 대해 쓰게 되어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
"작가는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해결하고 싶은, 아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이 글을 씁니다."

물음표에 쉬 마침표를 찍거나, 느낌표로 대체하지 않기를. 쓰는 과정을 통해 동일한 물음표를 품고 사는 이들과 손잡을 수 있기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메모 독서는 한 사람을 깊이 알기 위해 시간을 충분히 들여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오랫동안 소중하게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죠."

독서는 "만남"이다. 편의점에 서서 서둘러 먹는 삼각김밥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즐기는 프랑스식 만찬이어야 한다."


"'경계선'은 잠재적 '전선'이기도 하다.
하나의 경계선은 두 개의 대립된 영토, 전투 가능성이 있는 두 진영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영혼에 경계선을 그음과 동시에 영혼의 전쟁터가 만들어진다." (켄 윌버, <무경계>)

"성장이란 자신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다.
밖을 향한 조망과 안을 향한 깊이라는
양편 모두에 있어서 경계의 성장을 의미한다." (켄 윌버, <무경계>)

<무경계>라는 책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세계관에 관한 통찰, 신앙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 아닐까? 경계의 성장과 확장. 지금 내가 너무 간절히 원하는 주제다.


"세 번째 부작용은 모르는 게 점점 많아집니다.
이전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읽은 책을 더 잘 소화하는데 모르는 것은 더 늘어납니다.
메모 독서로 책을 읽을 때마다 지식의 경계가 확장되면서
새로운 경계와 인접하는 더 광대한 미지의 영역과 맞닥뜨립니다.
메모 독서를 하면 할수록 내가 모르는 세계가 얼마나 드넓은지 깨달아요.
독서는 무지(無知)의 확장입니다.
메모 독서가 저를 겸손한 독자로 만들었습니다."

독서는 무지의 확장!!!! 책을 많이 읽을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끼기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만 더 견고해진다면, 경계가 확장되는 대신 더 축소되고 선명해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독서가 아니다. 책이라는 벽돌로 성을 쌓아 올리는 고립이다. 확장, 성장, 경계의 유연성, 무지의 확장이 진짜 독서다. 나의 무지의 영역을 넓혀보자. 밑줄로 나의 경계를 지워보자.




막상 해보니 알 수 있었다. '메모 독서'는 나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채우는 일이었다.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를 남길 때마다 책과의 대화가 깊어졌다. 글을 쓰는 마음의 경계도 조금씩 더 넓어졌다. 형광펜과 밑줄, 메모와 기록이 나를 자라게 하고 있었다.


저자는 독서 노트 기록을 꾸준히 실천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도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독서 노트는 '독서'와 '삶'을 '글쓰기'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독서 노트는 '완벽함'이 아닌 '꾸준함'이 목표다.

내가 읽는 모든 책의 독서 노트를 쓸 필요는 없다.

내가 마음에 드는 책만 독서 노트를 쓰면 된다.

독서 노트는 일주일에 한 번만 써도 충분하다

독서 노트는 '선택적 저장 기록'이다

한 권을 다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간에 다른 책의 독서 노트를 먼저 써도 된다.

기록할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필사와 함께 공백을 남겨두고 나중에 써도 된다.


낭만을 향유하며 사는 발걸음이 이토록 가벼울 수 있다니!


나는 이제 책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흔적을 남긴다. 이 기록이 몇 년 후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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