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다귀 같은 인생도 진한 맛이 난다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만약 선생님 인생을 맛으로 표현한다면요?“
'앗?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럼에도 나는 3초 만에 답했다.
“저는, '사골맛'이요."
나는 그 순간 왜 '사골'을 떠올렸을까?
무의식이 툭 내뱉은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던 내 생각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그날 상담선생님과 마주 앉아 '사골맛'에 대해 이야기 한 순간이 그랬다.
"저는 요즘 뼈다귀만 남은 제 삶을 끓이고 또 끓여 우려내고 있는 기분이에요. 고기 한 점 없이 앙상한 뼈다귀. 내게 남은 건 그게 전부라고 느끼거든요. 그걸 가지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을 넣고 끓이는 것뿐이에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끓이기 시작했는데, 끓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진한 맛이 우러났으면 좋겠다. 오래 끓이는 만큼, 더 깊은 맛이 우러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도 이 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 속부터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지 뼈다귀만 넣고 사골 국물을 끓이고 있어도, 내 인생이 가난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실시간으로 나를 치유하는 순간이었다.
'아, 뼈다귀 같은 인생도 진한 맛이 날 수 있다니!'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뼈다귀처럼 앙상했던 내 과거가 떠올랐다. 마치 주마등처럼. 차라리 땅에 묻혀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싶던 때의 처참함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나는 사골맛을 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상담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물을 붓고 있었다. 나에게 불을 지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해한 배우자 덕분에 텅 빈 내 삶의 냄비에 물을 붓기 시작한지 이제 어언 3년.
처음엔 그저 맹물이었다. 하지만 끓일수록 점점 색이 변했다. 내 삶도 그랬다. 그래서 오늘도 내 마음속 부엌에는 보글보글 끓는 솥이 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국물은 점점 깊어진다. 들여다보면 거기엔 뼈다귀뿐.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국자를 들어 조심스레 한 숟갈 뜬다. 그리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 국물을 떠먹고 따뜻해졌으면. 지친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그런 한 모금이었으면.'
그 순간이 오면 마주 앉은 이에게 웃으며 말해야지. "나야, 사골맛."
"그러니 너도 한 입 먹고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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