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산산조각 난 유리파편이 아니다
한 달 전, 아침에 요리를 하다가 유리병을 깼다. 혼자 밥을 차려 먹으려고 국을 끓이다가 다진 마늘이 필요했는데, 냉장실 맨 위칸에 넣어둔 다진 마늘병을 꺼낸 후 냉장고 문을 닫으려는데 손에서 유리병이 미끄러진 거다.
쨍그랑!
산산이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다진 마늘과 함께 엉켜 마구잡이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있는 일이었다. 휘몰아치는 정서적 학대의 일상이 반복될 때면 무언가를 더 자주 깨뜨리고, 놓치고, 부딪쳐 다치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깨진 그릇조각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저주를 내뱉곤 했다.
”이젠 그릇까지 내 맘대로 안 되고 지랄이야.
밥 한 끼 커피 한잔을 맘 편하게 먹지를 못하지 내가.
이런 거 하나까지 나를 괴롭히고,
그지 같은 이 인생 딱 이 깨진 유리조각 같네.
이 파편들 위를 맨발로 자근자근 밟아가며 사느라
피투성이 된 꼬락서니가 내 삶이야, 완전. “
지금 생각하니 오버도 이런 오버가 없다 싶지만, 당시에는 진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저주였다. 내 인생이 한탄스러웠다. 모든 상황이,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깨진 유리병마저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저 깨진 유리조각이 우연의 우연의 우연을 거듭해 내 대동맥을 끊으며 깨졌다면 더 이상 힘들 일은 없을 텐데...‘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한 달 전 그날 아침, 깨진 유리조각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밥 한 끼 편하게 못 먹게 유리병까지 또 깨지고 난리야!‘가 아니었다. ‘저걸 언제 다 치우지?’도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유리조각을 하나하나 집어 담으며 했던 생각은, ‘이 유리파편은 내가 아니다. 산산조각 난 내 인생이 아니다’였다.
꼼꼼하게 바닥을 치우고, 닦고, 청소기를 돌리고, 한 번 더 닦은 후 어쩐지 마음이 아렸다. 깨진 유리병 하나에도 마음이 쉬 무너져 내려 와르르 주저앉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저 무생물인 그 파편들을 바라보며 나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괴물처럼 느껴져 스스로 서글퍼 울며 화를 내던 내 모습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정서적 학대 속에서 사는 삶은 그런 거다.
하루하루 내가 깨뜨리지도 않은 유리파편 속에서
마음 졸이며 사느라 여기저기 피가 나고 아픈 삶.
그런데 정작 아프다고 말할 수 조차 없는 삶.
그래서 그 아픔과 쓰라림과 슬픔과 분노가
나 자신을 향하고, 무해한 타인을 향하고,
심지어 수동적 존재의 최고봉인 사물에게까지 향하는 그런 삶이다.
그럼에도 나는 깨진 유리병이 아니다. 내 삶은 산산조각 난 유리파편이 아니다. 어질러진 유리 조각들을 치워 나를 보호하는 건 내 몫일지 몰라도, 나는 깨어진 존재도, 조각난 존재도 아니다. 그걸 깨닫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 그 여정을 하나씩 나눠보려 한다. 깨진 유리병 하나에도 와르르 무너지던 나처럼, 지금도 조각난 유리파편을 바라보며 자기 삶과 꼭 닮았다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나도 그랬노라고, 그런데 아니더라고. 절대 그런 게 아니더라고.
* 2025년 1월 16일 브런치 스토리에 발행한 글을 매거진으로 수정 및 재발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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