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
나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생존본능’이었다.
그럴듯한 ‘글’을 써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내 안에 있는 오만가지 복잡한 것들을 내보내기 위해 썼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넘칠 때면, 손가락이 먼저 반응했다.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내 감정이 활자로 흘러내렸다. 고뇌가 마음을 가득 채우면, 글이 마려운 듯 본능적으로 써내려 갔다. 내 안의 혼란을 털어내고 나면 미미한 평온의 씨앗들이 자라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쓰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이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라고 하셨건만, 나는 “단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전신마비에 걸린다.” 눈을 떠야 할 때 뜰 수 없고, 걸어야 하는 순간 발걸음을 뗄 수 없다. 글쓰기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휘갈겨 쓴 나의 글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창작물‘ 보다는 '거칠게 토해낸 활자’에 가까운 그 글들을 아무에게나 공개하는 건 ‘배설 폭력’이나 다름없다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극소수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다. 나의 내면 깊은 곳까지 속속들이 아는 친구들. 내 글에서 콩나물 섞인 똥을 발견한다 해도 더럽다 비웃지 않을 아량 넓은 귀인들에게만 내 글을 공개하며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브런치에 일상 단상 매거진을 만들어 두고도 글을 올리지 못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인기피 담요를 뒤집어쓰고 방구석에서 혼자 자판을 두드리며 살다가, 사방이 유리로 된 집으로 이사 온 기분이었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행여나 누가 보지 않을까 두리번거렸다. 눈길 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내 속내를 24시간 실시간 생방으로 내시경 당하는 공간 같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내 마음은 현실과 딴판이었다.
글이 마려워도 참았다. 비집고 나오고 싶어 하는 글을 다시 쑤셔 넣었다. ‘아직 때가 아니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그렇게 참고 또 참으며 밥상을 먼저 차렸다. 즉흥적인 감정을 쏟아놓는 대신, 다듬고 숙성시킨 문장을 먼저 내놓기로 했다. 타닥타닥 글도마를 오가는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 내 안에도 서서히 평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써낸 글들은 어느 틈엔가 내 유리창에 커튼을 달아주었다. 얇은 천 조각 같은 안정감이 찾아왔다. 내 마음의 정원을 가꾸듯 글을 심고 다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부터 기록 중독자답게 글을 쓰기로 했다. 쓰는 행위로 일상의 파편을 줍던 그 마음으로, 일상의 씨앗을 심는 정원사가 되어 보기로 했다. 떨리는 손끝으로 새 집에 걸린 커튼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다시, 기록 중독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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