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사계절'은 없다!
거울 앞에 서서 반묶음으로 머리를 묶다가 멈칫했다.
'엇? 뭐지? 이 살색 향연은?'
내 손가락이 머리칼을 훑고 지나간 흔적이 밭고랑 위에 남겨진 갈퀴자국처럼 선명했다. 손끝이 스쳐간 자리에 훤히 드러난 두피는 낯선 풍경이었다. 내 머리 위에 작은 겨울이 찾아온 듯했다. 문득, 친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미는 이제 머리카락이 없어서 보기 숭해. 요렇게 이렇게 빗어도 허탕이야"라고 하면서도, 말끝마다 머리를 매만지시던 할머니. 윤기 흐르던 머리칼의 기억은 남았지만, 빗질은 점점 헛손질이 되어가던 할머니. 새까만 머리칼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내 눈에는 도긴개긴이건만, "어때? 이제 좀 나아 보여?" 라며 천진난만하게 묻던 할머니. 나에게는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모습이 내 손끝에서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나도 이제 저물어 가는 건가?' '내 인생도 이제 가을 낙엽처럼 지는 계절인가?' 붙잡고 싶어도 빠지는 머리칼과 가볍고 푸석한 낙엽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뭔가 억울했다. 내 삶에는 봄날처럼 벚꽃 아래에서 웃던 순간도, 여름 태양 아래 이마에 땀방울을 닦던 순간도 여전한데 말이다. 그저 휑한 머리칼 하나 때문에 꼼짝없이 '가을의 나이'에 갇히다니.
다소 울적해지려던 내 마음을 달래준 문장이 있었다. 바로, <그런 나이는 없습니다>라는 책에 실린 정희진의 글 '나이 듦? 그냥 생로병사'의 한 구절이다.
"나이와 계절의 비유는 너무나 무의식적이어서, 누구도 자유롭기 힘든 인지 방식이다. 왜 청춘은 봄이며, 중년은 가을인가. 이 비유는 자연스러운가... 봄의 생명은 시작이다. 이에 반해 낙엽이 지는 가을은 중장년의 계절이고, 겨울은 마른 고목의 노년이다. 이런 이미지는 왜 만들어졌을까."
이어서 저자는 우리가 흔히 계절에 비유하며 이해하는 생애주기가 "허구"라고 주장한다.
"원래 생애주기의 의도는 20-30대 젊은 남성들을 최적의 생산노동자로 동원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 연령대가 인간 노동력의 '피크(peak)'라고 보고, 모두를 차별한 것이다. 젊으니까('미숙하니까') 임금을 덜 줘도 되고 이 외의 나머지 사람은 힘이 없으니까 덜 줘도 된다는, 자본의 입장에서 완벽한 논리였다."
낭만이라고 믿었던 생의 계절 비유가 자본주의의 음모라니, 기막힐 노릇 아닌가! 말도 안 될 일이다. 내 인생의 낭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젊음'만이 '봄과 여름'이라는 허구의 계절을 잘라내야만 했다. 빠져나간 머리칼 덕분에 내 머릿속에서 계절을 지웠다. 대신, 그 자리에 나만의 언어를 다시 심기로 했다.
<유쾌한 나이 듦, 언니들에게 물어봐>는 그렇게 시작한 브런치북이다.
'인생의 사계절'이라는 구태의연한 비유 대신, 나만의 언어를 찾는 유쾌한 탐험이다. 앞서간 언니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내 생각의 뿌리를 더듬어보는 시간이다. 혹시 아는가? 밭고랑 위를 스친 손빗질에서 시작된 이 작은 배움이, 어느 날 내 마음의 모근에서 잔머리처럼 나만의 사유가 빼꼼 돋아날지. 이제 남은 건 그 잔머리가 제멋대로 자라나는 걸 지켜보는 일이다. 언젠가 내 사유에도 윤기가 흐르면,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빗질해보려 한다.
"인생의 사계절? 나이와 계절의 비유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없다." -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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