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은 자의 땅에 세 들어 산다
납골당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는 커피를 마시기 전에, 먼저 죽은 자와 인사를 나눈다.
카운터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순간,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밟고 서 있다. 바닥에는 이 땅에서 '잠든 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잠든 날'이 기록된 카펫이 깔려 있다. 커피를 주문한 후 한 발짝 옆으로 옮기면, 또 다른 망자의 이름을 밟고 서서 치즈 케이크를 고른다. 향이 그득한 얼그레이가 좋을까, 담백하고 진한 플레인이 좋을까?
주문한 음료와 케이크를 받아 들고 자리에 가서 앉는다. 테이블에는 꽃다발 모양 메모지와 묘비 모양의 펜이 놓여 있다. 음식을 먹기 전, 테이블에 각인된 낯선 이름들 중 한 명을 선택한다. 묘비 모양의 펜을 쥐고, 이곳에 잠든 이름을 바라본다. 처음 만난 망자에게 어떤 인사를 해야 할까? '안녕하신가요? 저는 000이라고 합니다'라는 말로 적어 내려간다. 다 쓴 편지는 관 모양 보관함에 넣는다. 언젠가 망자가 그것을 읽어주길 바라며. '납골당 카페'에서 의례 거치는 의식이다.
어떤가? 이런 카페가 있다면 가보고 싶을까?
나는, 가보고 싶다. 간절히.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런 나이는 없습니다>에 실린 김지승 작가의 글 '쇠락과 쇄락 사이'에는 실제로 납골당을 개조한 카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름의 상상력을 보태어 그려본 장면이다. 실제로 망자의 이름이 쓰인 카펫을 밟고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작가를 향해, 그 카페를 소개하고 데려간 80세 할머니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이 행성은 거대한 무덤이야."
김지승 작가도 질세라 답한다.
"지금까지 다녀간 1050억 인류의 무덤이죠."
이 말에 가슴에 쿵 내려앉았다. 동시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그들 뒤를 따른다. 그들 위를 걷는다. 그들의 이름을 밟고 선다.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을 '산 자의 땅'이라 생각하지만, 이 땅 아래에는 나보다 먼저 숨을 거둔 수많은 얼굴들이 묻혀 있다.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보다 많은 이곳.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을 ‘죽은 자의 땅’이라 부르지 않는다.
인류는 어떤 형태로든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분하는 영역을 만들어냈다. 죽음 이후 그저 '소멸'만이 나를 기다릴 뿐이라 생각하기에는 허망해서, 혹은 죽음 때문에 헤어지는 사랑하는 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위해서. 이유야 무엇이든, 저마다의 개념으로 '죽은 자'들에게는 이 지구별이 아닌 다른 곳이 배정된다. 뭐가 되었든 그곳은 ‘더 좋은 곳’이라며 '그곳'으로 보낸다.
죽은 자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건, 결국 산 자를 위한 일은 아닐까?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나와 죽음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은 아닐까? 허나, 내가 죽음에게 거리를 둔다고 죽음까지 나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년보다 더 가까이 있는 이 죽음을 '이 세상'에서 끌어 안기 보다 '저 세상'으로 보내며 살아왔다.
요즘 나는, 죽음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직‘ 이르다고, 낯설다고, 평생 외면하며 그림자처럼 지고 다니고 싶지 않다. 죽음을 알아가며 벗이 되고 싶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모든 호흡은 삶을 들이마시고 죽음을 내뱉는다. 하루 더 살아낸 만큼, 죽음에 더 다가간다.
지구를 ‘죽은 자의 땅’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학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나는 죽은 자들이 남긴 땅에서 자란 곡식을 먹고 살아간다. 그들의 주검이 양분이 되어 우리를 먹인다. 죽은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어떨까?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발돋움해야 하는 높은 곳, 혹은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는 깊은 곳이 아니라, 내가 지금 앉아 있는 바로 옆자리라면 말이다.
카페에서 눈이 마주친 다른 손님에게 미소를 건네듯, 보이지 않는 망자에게 온기를 건넬 수 있다면. 커피 한 모금,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물고,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죽음의 향을 음미할 수 있다면. 지구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산 자'들의 목소리뿐 아니라, 내 몸 곳곳을 타고 흐르는 망자의 역사와 그들이 남긴 유산의 목소리에 잠시나마 귀 기울일 수 있다면.
이 땅이 죽은 자들의 땅이라 해도, 기꺼이 세 들어 살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지나간 자리를 보금자리 삼아 살면서도 자신들의 존재를 잊는다고 타박하지 않는 망자들이라면, 적어도 고약한 집주인은 아닐 테니 말이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사랑하듯, 죽어서 잠든 모든 것에도 고마워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름 모를 망자들을 매일 기억하기 위해, 노년에 납골당 카페를 하나 차려볼까.
#겨자풀식탁이야기
#유쾌한 나이 듦 언니들에게 물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