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는 '힙'하다

'고잉 그레이' 회색지대에서 배우는 유연함

by 겨자풀 식탁


"나는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야."

"뭐든지 확실한 게 좋지."

"우유부단한 건 답답해서 못 참아."

"사람은 자고로 자기 주관이 뚜렷해야 하는 법!"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는 걸 점점 더 좋아한다. 단연 멋진 모습이다. 그런데, 이 모든 말들이 정말 멋지기만 할까? 닮고 싶을 만큼 '뚜렷한 주관'을 지닌 사람과 가까이하기 싫을 만큼 '경직된 사고'를 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느그 아빠가, 조개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 나이 드는 존재>에서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가 남편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개껍질처럼 입을 앙 다물고 고집스러워 진다는 뜻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만들어진 신>이 처음 출간된 후 '독실하게' 그 책 한 권만 읽고 또 읽었다. 반면, 작가의 어머니는 70대 중반에도 젊은 세대처럼 살며 그들의 언어, 책, 공연, 등을 끊임없이 배우는 분이다. 작가의 어머니가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두었다면, 아버지는 한 권의 책으로 문을 닫았다.


작가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닮은 ‘호기심'으로 '정신적 스트레칭'을 하며 살고 싶다 했다. 그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중년으로 접어들며 조금씩 뻣뻣해지는 우리의 몸은, 어쩌면 우리의 정신에게 너무 뻣뻣하게 살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젊음은 새까만 머리칼을 휘날리며 하얗게 불태운다. 노년은 새하얀 머리칼을 손빗질 하며 어스름한 새벽에도 눈을 뜬다. 그렇다면 중년은? 밤을 하얗게 불태우기에는 체력이 딸리고, 어스름한 새벽에 별을 보며 눈을 뜨기에는 새벽잠이 내 곁에 머무는 시기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중년'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청년들과 교감하기에는 그들의 변화가 빠르고 낯설다. 노년의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자니 그분들의 언어로 나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젊음은 나에게 '너무 하얗다' 하고, 늙음은 나에게 '아직 검다' 한다.


어쩌면 중년은, 새까만 머리와 새하얀 백발 사이, ‘고잉 그레이’하는 시기다.


최근 헤어디자이너들 사이에는 흑발 염색 대신 자연스러운 '그레이 헤어 염색'이 유행이라고 한다. 뜨문뜨문 올라오는 흰머리를 새까맣게 되돌리기 위해 매 달 염색하는 대신, 흑색과 백색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해주는 '고잉 그레이' 스타일링이라고 한다.


나는 이 '고잉 그레이' 헤어 스타일이 뻣뻣한 중년의 정신이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이 아닐까 싶다.


흑색으로 나의 나이 듦을 가리려 애쓰지 않는다. 세월 따라 찾아드는 백색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대신, 둘의 경계를 허물며 나만의 지경을 넓혀간다. 과거 내가 알던 흑백의 확신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이제 나이 들어서 그런 건 모른다며 손사래를 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젊은 '척'하며 낯선 말투를 덧입힐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살아온 세월과 젊음이 나눠주는 생기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 된다. 내가 쌓아온 연륜과 윗세대의 고집스러운 조언 사이에 적당한 회색으로 머물면 된다.




'경직된 뻣뻣함'은 회색지대를 지우려는 시도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세월이 만들어낸 회색지대. 내 윗세대와 나 사이의 회색지대. 그 회색을 지우고 흑색, 아니면 백색으로 나만의 주관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나의 나됨'을 지키는 노력의 일환이니까.


하지만, 회색지대는 어정쩡하고 불분명한 곳이 아니라, 젊음과 늙음을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가질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그레이는 블랙도 화이트도 아니지만, 둘 다 품고 있지 않은가. 그러하기에 흑에도 백에도 어울리는 중후함과 시크함을 연출하기에는 회색만 한 게 없다.


'고잉 그레이'를 단순한 헤어 스타일링 트렌드로만 보지 말자. '고잉 그레이'는 젊음과 늙음, 두 가지를 모두 품어내는 확장의 과정이다. 비단 색깔도 그러할진대, 나 또한 '정신적 스트레칭'으로 '고잉 그레이' 한다면, 누구보다 '힙'하게 나이 들며 어우러질 수 있지 않을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이 아니라, 여기도 저기도 어울리는 유연함으로 말이다.


"'그레이'는 '힙'하다"를 외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뒤진다. 신문의 사설과 기사를 훑는다. 유튜브 쇼츠에 들어가 인기 동영상을 본다. 시사 프로 패널들의 토론을 보고,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토크쇼도 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한 번 더 말을 거넨다.


"아들, 요즘엔 무슨 책이 재밌나?"

"어머님, 요즘 드라마 뭐 보세요?"


조개껍질은 입을 벌려 조갯살을 토해낼 때만 맛이 난다. 나는, 맛있고 힙한 그레이로 나이 들고 싶다.


"우리는 모두 결국 생의 마지막에 영원한 밤을 맞게 되어 있다.

그때가 되어, 볼 만큼 다 봤고 알 만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밤이 아직 다가오기도 전에 미리 조개껍질을 다물 필요는 없다."

- 김하나, <우리, 나이 드는 존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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