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키운 건 할마의 거리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키워. 네 새끼는 네가 제일 잘 알아."
첫째를 낳고 처음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호르몬 탓에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던 눈물과는 달랐다. 난생처음 임신을 하고, 하늘이 노랗게 되는 것을 보며 아이를 낳았다. 부서질 듯 조그만 갓난아기를 안고 밤낮으로 젖을 물렸다. 모유가 모자라 우는 아기를 보며 모자란 건 모유량이 아니라 나의 '엄마력'인 것만 같았다.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할 때, 묵직한 신뢰를 던져준 말이다.
“너도, 엄마야. 엄마인 널 믿어."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그 후로 엄마는 심할 정도로 나를 그냥 놔뒀다.
아이 넷을 낳는 동안 “엄마가 가서 산후조리 도와줄까?"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물론, 애정 어린 금일봉은 받았다). 기저귀는 뗐는지, 반찬투정은 안 하는지, 소아과 검사 때 보니 키는 자랐는지, 몸무게는 늘었는지, 계절에 맞게 옷은 잘 입히는지. 잠버릇은 어떤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건 냉혹한 무관심 아닌가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엄마는, 엄마가 된 내가 '알아서' 하게 놔뒀다. 덕분에 나는 '육아철학'이 달라 엄마와 부딪친 적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친정엄마 찬스를 꺼내 내 아이를 맡겨본 적도 없다.
한 마디로 우리 엄마는 전형적인 ‘할마(할머니 + 엄마)가 아니다. 그냥, 내 엄마다.
솔직히 나는 ‘할마’가 되어주는 친정엄마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데, 마을까지는 아니어도 마을 어귀 모퉁이에 앉아있는 ‘할마’ 한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설마 ’할마‘가 ‘엄마’인 나를 잡아먹기라도 하겠느냔 말이다.
모르는 소리였다. 엄마와 딸, 할마와 엄마는 종종 서로 잡아먹더라.
“우리 때는 포대기가 최고였어. 수면훈련 한다고 울리지 마. 그러다 애 성격만 나빠져.”
"이유식은 무조건 곱게 갈아서 먹여. 자기 주도니 뭐니 한다고 음식 커다란 거 통째로 주면 먹다가 목 막혀 위험해."
“엄마, 우리 집은 남자 애들도 다 변기에 앉아서 쉬 해. 서서 하면 화장실 바닥 더러워지니까 미리 가르치는 거야. 그러니까 서서 하라고 하지 말라고.“
“00 이는 사과 껍질째 먹는 거 좋아해, 엄마. 괜히 손 많이 가게 깎아주지 마요. 아이 참, 진짜 목에 안 걸린다니까.“
‘할마’의 경험은 ‘엄마’의 주관을, ‘엄마’의 일관성은 ‘할마’의 애정 어린 염려를, 사랑과 정성의 이름으로 서로 잡아먹는다. 별 거 아니라고 넘어가기에는 양쪽 모두에게 지극히 별 거인 일들이 쌓여, 딸이었던 엄마가, 엄마였던 할마가 어느새 발톱을 까칠하게 세운 채 한 덩어리로 뒤엉킨다.
시샘하는 마음에 안 좋은 점만 콕 집어 지적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런 싸움조차 부러웠으니까. 의견 충돌을 할 수 있다는 건 결국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지금 와서 돌아보면 엄마에게 고맙다.
나를 덩그러니 내버려 둔 관조적 무심함 덕분에 나는 비로소 '엄마'가 되었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내 몸보다 큰 '엄마'라는 명패를 달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너도 이제 엄마야”라며 툭 던져주고 간 신뢰가 행여나 시들어 말라비틀어질까 수시로 물을 주고 보살피느라 몸과 마음이 바빴다.
아이를 키우다 고민이 생기면 “엄마, 이럴 땐 어떡해?”라고 묻는 대신, 다양한 책과 전문가의 영상을 뒤지며 육아 경험치를 넓혀갔다. 기쁜 일이 있으면 기록으로 남겼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땐 눈물을 훔치며 일기를 썼다. 처음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좌충우돌 순간들을 글로 남기며, 아이와 함께 나도 자랐다.
'할마' 없는 '엄마'로 살아온 지 15년.
"너도 엄마야"라는 말은 이제 버거운 명패가 아니라 자신 있게 내건 간판이 되었다. 세월과 함께 생긴 흠집마저 연륜이 되어버린 '엄마 맛집'이 되었다. 이제 나는 종종 '원조 엄마 맛집' 여사님을 찾아가 담소를 나눈다.
'할마'이기를 거부한 관조의 여왕 여사님과 나란히 마주 앉아 고주알미주알 수다를 떤다. 알고 보니 '마을 어귀'에 앉아 다 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내가 아이를 키운 세월만큼, 여사님도 속으로 애태우며 지켜봤겠지. 여사님은 아무 말하지 않지만, 눈가의 잔주름이 말해준다.
시크하신 여사님 덕분에 나도 '엄마 맛집'이 되었다며 '원조 엄마 맛집'과 전혀 다른 메뉴를 내놓는다.
"맛있네!"
여사님이 호탕하게 웃는다. "이건 어떻게 만든 거야? 신기하네."라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그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그런 여사님을 보며 나도 함께 웃는다. "먹고 싶은 것만 먹어요, 여사님. 여사님 밥상이니 여사님이 원하는 대로 먹어야지!"
여사님의 사려 깊은 거리는 '딸'을 '엄마'로 키웠다. 침묵에 가깝도록 묵묵한 신뢰는 '할마'를 '엄마'로 남게 했다. 덕분에 우리는 마침내 '엄마'라는 지점에서 서로를 만났다. 동등한 '엄마'로서 친구가 되었다. 원조 엄마 맛집 여사님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거리'가 나를, 우리를, 함께 자라게 했다.
그런 엄마를 떠올리며 박정은의 <사려 깊은 수다>속 문장들이 생각났다.
"상대의 문제에 골몰해서 당장 해결해 주어야 할 것처럼 느끼거나, 답을 내려 주려는 태도는 자기와 타자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옵니다... 세련된 공감이란 남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지 않는 것, 답을 주려 하지 않는 것, 남의 말을 자르지 않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한국 여성의 모임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한계 혹은 약점은, 젊은 사람이 어떤 고민을 나누면 연장자가 정답을 주려 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세련된 공감을 위해 기억할 원칙은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일들은 늘 새로운 것이며, 내가 상대에게 배울 점은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경험은 고유한 것임을 인정하면서, 그 경험 안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경청하는 자세는 다른 여성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친절한 배려입니다."
"나이가 든 사람이 더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 무조건 미숙한 것도 아님을 기억하면서, 상대방이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를 접고 상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 것이 본질적인 경청의 원칙입니다."
- 박정은, <사려 깊은 수다> 중에서
오늘도 나는, 사려 깊은 관조가 만드는 아름다운 거리의 힘을 믿기로 한다. 연륜이라 부르고픈 나의 경험을 조용히 뒤로 밀어 둔다. 그리고 마을 어귀에 앉아 수많은 딸들을 바라본다. 엄마가 되어서 그리고 엄마가 되지 않아서, 그들이 나에게 가르쳐 줄 새로운 맛집 레시피를 어깨너머로 배울 날을 기다리며, 잔주름이 생길 때까지 조용히 미소 지어 본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쾌한 나이 듦 언니들에게 물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