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우리 부부는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오래 알고 지내기도 했고, 결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연애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만큼 사랑했기에 결혼을 결정하는데 큰 고민이 없었다. 남편이 시부모님께 결혼을 알리기로 한 날, "혹시 나를 싫어하시면 어쩌지?"라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당연히 좋아하시지"라고 답했다. 사실은 나도 겸손한 척 묻긴 했지만 반대하실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능력껏 양가 도움 없이 결혼할 계획이었기에 반대보다는 기특하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은 여기서부터 꼬이고 있었다. 결혼은 어쨌든 저쨌든 알리는 것이 아니라 승낙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마도 사랑에 눈이 먼 우리보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셨을 시부모님은 남편에게 "조금 더 생각해보자"는 말로 답을 대신하셨다. 이 말을 전해 듣고 내 머릿속은 물음표들로 가득 찼다. '조금'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래서 긍정적이신 건지 부정적이신 건지, 무엇보다도 ‘왜' 조금 더 생각해야만 하는지... 그날 이후로 우리는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그러다 남편으로부터 '시간을 갖자'는 통지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헤어지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반년 동안 정말 잠자코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림으로써 결혼에 골인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나의 자존심은 마치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비틀어지고 쪼그라들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걱정스러운 존재, 내가 그런 존재이기에 결혼을 반대하시는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서도 쪼글쪼글해진 내 자존심은 반드시 이 결혼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자녀계획을 앞당기는 것에 동의하며 나는 속으로 '드디어 임신으로 나를 증명할 기회가 왔다'라고 생각했다.
임신, 임신, 임신, 임신!
일상의 중심이 나에서 임신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시간이 하루, 한 달, 1년의 주기가 아닌 생리주기에 맞춰 흘러간다는 것이다. 오늘이 며칠인 지보다 오늘이 가임기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한 삶, 그렇게 나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임신에 두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우선 임신에 좋다던 음식부터 하나 둘 장만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유로 시작해서 포도, 쑥즙 등 '임신에 좋다더라'하는 음식은 한 번씩 먹었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 키기 일수였던 내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다하고 뜨거운 쑥차를 후후 불어먹으며 더운 여름을 버텨냈다.
남편도 이런 나의 노력에 당연히 동참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나의 도를 넘은 임신 타령에 남편은 협조하기는커녕 점점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남편의 불성실한 협조에 가슴속에서는 천불이 끓어 넘쳤지만 화를 내면 아예 시도조차 못할까 봐 두려워 화도 제대로 못 냈다. 그래도 눈치를 보며 열심히 타이밍을 잰 덕인지 몇 번의 시도를 할 수 있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생리 예정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임신테스트기는 언제나 한 줄 일 뿐이었다.
사실 자녀계획을 앞당기며 마음 한편으론 화학적 유산을 경험하기 전처럼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면 곧 아이가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노답인 임신테스트기와 몇 달의 시간이 보내며 나의 하늘을 찌르던 임신 자신감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해갔다. 처음에는 한 줄짜리 임신 테스기를 미련 없이 보내는 쿨한 모습을 시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지질해져 갔다. 한 줄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혹시 조명이 어두워서 그런가' 싶어 집안에 있는 모든 조명 아래에 임신테스트기를 비추어보기도 했고, 체념하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도 '혹시?' 하는 생각에 몇 시간마다 휴지통에서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다시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임신테스트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매직아이처럼 한 줄짜리 임신테스트기가 두줄처럼 보이기도 했다.
임신을 준비하고 시도하고 실패를 확인하고 절망하고 다시 임신을 준비하는 무한 반복의 궤도 속에서 나는 속부터 곪아가고 있었다. 남편이 미웠고, 구질구질한 나 자신도 싫었고, 임신이 안 되는 이 상황도 지겨워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SOS
쭈글쭈글한 자존심은 시간이 지난다고 제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상처 받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이대로 활활 불타다 그대로 소멸되어 버리거나 조급증이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미워도 구조신호를 보낼 곳은 남편뿐이었기에 "나 아무래도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아"라며 운을 띄웠다.
심리상담을 받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많이 반성했다. 무엇보다도 임신을 나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은 제일 부끄러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된 다는 것은 한 생명의 모든 성장과정을 책임진다는 것인데 나는 그중 첫 단계만을 완수하면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나만의 착각 속에서 임신에 집착하고 있었다. 임신보다 나는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 양육 환경은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소중한 신혼시절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하다. 부부란 둘만이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특별한 유대감을 지니는 존재이지만, 나와 우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개인이기도 하고, 실제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남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남편에게 내 능력을 증명하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도록 강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남편은 자주 아팠었는데 자기 속마음을 잘 표현할 줄 모르는 저 남자가 얼마나 맘고생을 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참으로 어리석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