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체면, 두 가지 언어
처음 베트남에서 사람과 비즈니스 미팅이나 중요한 자리에서 식사를 했을 때, 나는 계산서를 펼쳐 들고 항목을 하나씩 짚었다. 한국에서 하던 방식이었다.
틀린 게 있으면 바로잡는 것, 나는 그게 꼼꼼한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는 그렇게 끝났고, 다음에 만남에서 그가 계산을 할 때의 방식을 유심히 살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한참 후에야 알았다.
베트남에 오래 살면서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들은 내가 계산서를 꼼꼼히 살필 때 늘 조용히 웃으면서 자리를 마무리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뭘 의미하는 걸까
그들이 항상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베트남 가족들과 식사자리를 마무리 할 때를 유심히 보면 여자들이 먼저 계산서를 꼼꼼히 따지고 계산서를 남자에게 전달을 한다.
지불하는 사람은 권위를 나타낸다.
친한 사람들과 있는 자리가 아니면 금전적인 부분에서 최대한 자신의 권위를 지켜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사회 생활 초반, 나는 금기를 예절의 문제로 인식했다.
주의사항을 목록처럼 외웠다. 그런데 진짜 실수는 목록에 없었다.
리스트로 정리된 금기는 행동의 표면을 알려준다.
왜 그 행동이 문제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이유를 모르면 응용이 안 된다.
목록에 없는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베트남의 행동 코드는 예절 규범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생존의 방식이 일상의 언어로 굳어진 것이다.
전쟁과 식민 지배, 그리고 그것을 통과한 세대의 경험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몸에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다. 물론 모든 베트남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도시와 지방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개인이 다르다.
그럼에도 내가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마주친 패턴이 있다.
돈을 다루는 방식과 감정을 다루는 방식, 이 두 가지다.
베트남에서도 가격을 흥정은 하지만. 단, 조용히 한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계산서를 공개적으로 따지거나, 주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금액을 언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내가 아는 친한 한국인 사업가는 베트남 파트너와 첫 미팅에서 견적서를 꺼내 항목별로 왜 이 금액이 비싼지를 설명했다. 논리적이었고 근거도 있었다. 미팅은 웃으면서 끝났다.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직접 중간에서 연결해준 베트남 지인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말이 이랬다.
'그분이 좀 불편하게 느꼈대요.'
돈 이야기는 둘만 있을 때, 낮은 목소리로 한다. 이것은 비밀주의가 아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금액을 따지는 행위가 상대를 불신한다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거래는 계약서보다 관계가 먼저다.
관계가 충분히 쌓이기 전에 숫자를 꺼내면, 상대는 이 사람이 관계가 아니라 거래만 원한다고 판단한다.
체면의 구조도 함께 작동한다. 베트남에서 체면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관계의 것이다.
공개된 자리에서 상대의 견적을 문제 삼는 행위는 그 사람의 판단력을 공개적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체면도 함께 손상된다.
계산서를 꼼꼼히 따지는 사람은 효율적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리의 예절을 깨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베트남에서 오래 산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화를 잘 안 낸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데 어찌 사람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보통의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잘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다.
내가 본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은 그랬다.
심지어 나의 아내도 웬만하면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화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여러 장면들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한국과 달랐다.
언성을 높이거나 표정으로 불쾌함을 드러내는 대신,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했다.
연락이 느려지고, 만남의 밀도가 낮아지고, 대화가 짧아진다. 그것이 신호다.
공개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자기 통제력을 잃었다는 신호로 읽힌다.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상황의 우위에 있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전략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불리했던 시절의 경험이 문화적 감각으로 남은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한국인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 상대가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면 그것을 동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그 말은 때로 그 자리를 닫겠다는 신호다.
이후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봐야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
말이 아니라 그다음 행동에 감정이 담겨 있다.
나는 해외에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때 서로의 문화의 차이를 선입견이나 스테레오타입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 또한 대처의 한 방편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요한 사실은 베트남 사람들이 감정을 숨기는 이유에 있다.
그들의 언어는 표정이 아니라 거리에 있고, 말이 아니라 응답 속도에 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읽고 그 문화의 차이를 인지하는 일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예절과 권위의 그 경계선 사이 어디에서 친밀감을 표하고 관계의 진전을 서로 이루어 가는 일.
그것이 어쩌면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수 하지 않는 일임을 스스로 배웠다.
나 역시 그 언어를 배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틀린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안다. 상대가 웃으면서 자리를 마무리할 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를.
권위의 행사를 얼마나 예의있게 표하는 가 혹은 관계의 우의를 예로서 행사할 자질을 갖춘 사람인가
그 차이를 읽는 것이 베트남에서 관계를 쌓는 첫 번째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