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고, 덜어 내고, 비워야 비로소 보이던데...

왜 미니멀리스트 하라는 지 알겠더라. 똑바로 서려면 우선 이것부터...

by 철없는박영감

들어가지 않는 바지, 늘어나는 체중, 예전 같지 않은 체력, 이상수치가 보이는 건강검진 결과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이상 운동을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헬스클럽을 등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전에 실장님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엘리베이터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저렴하길래 그냥 동네 헬스클럽인 줄 알았다. 서울에서도 개인 트레이너를 붙여서 PT를 받아봤기 때문에 그때 배웠던 것을 그대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헬스 기구만 있는 저렴한 동네 헬스클럽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막상 찾아가 보니 서울 못지않게 전문적으로 관리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등록 전 상담만 한 시간을 했다. 음... 전 영업사원 출신으로 장삿속이겠거니 하고 '절대 안 속아!'라고 장담했건만, 어느새 일 년 치 회원권과 PT 60회를 결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무슨 운동을 해왔고, 식습관, 음주습관, 10년 전 체중 등을 물어봤다. 부끄럽지만 운동은 골프 치러 다니는 것이 전부고, 그나마도 마지막은 술판으로 끝낸다. 예전에 수영과 헬스를 했는데 지금은 안 한 지 10년이 넘었으며, 야식은 끊을 수 없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고, 일주일에 8일은 술을 마시는 거 같다. 10년 전 체중은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후에 침대에 눕히더니 여기저기 만져보고 살피면서 체크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만지면서 '어! 이상한데!'를 연발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시한부선고를 내릴 때 같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에이! 쑈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며 이때까지만 해도 잘 버티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서서 눈을 감고 제자리에서 힘차게 팔을 흔들면서 10번을 걸어보라고 했다. 10번 걷는 게 뭐 어려울까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10번은커녕 2~3번 하면 균형을 잃기 일쑤였고, 그나마 천천히 꾸역꾸역 마치고 눈을 뜨자 처음 위치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서있었다. 이후에 자연스럽게 서보라고 했는데, 오른발이 약 5cm가량 뒤로 빠져 있었다. 어... 왠지 점점 나도 같이 심각해졌다. 실장님이 점점 믿음이 가고, 의지하고 싶어졌다. 결정적으로 '발바닥 많이 안 아프세요?'라는 말에 훅 넘어갔다. 그때 가장 큰 고민이 발바닥이 너무 아픈 거였다.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항상 발바닥이 아팠다. 그렇게 회원권과 PT로 약 4백만 원을 결재했다.


헬스클럽 첫날, 나의 담당 PT선생님은 실장님이 아니고 소속 트레이너였다. 그래서 회원파일에 실장님과의 상담내역이 있었지만 다시 상담이 시작됐다. 그동안 해온 운동은 어쩌고, 식습관은 어쩌고... 다시 한번 부끄러워지며 상담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침대에 눕지는 않고, 거울 앞에 자연스럽게 서보라고 했다. 실장님과의 상담에서 시한부 선고받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배에 힘도 주고 허리도 꼿꼿이 세우고 턱도 당겨서 섰다. "몸에 힘주고 서 계신 거 아니죠?" 트레이너는 눈치가 백 단이었다. 그래도 모르는 척, 안 그런 척 "아니데요. 자연스럽게 서 있는 건데요"하며 누가 봐도 완전히 어색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섰다. 트레이너가 뒤에 서서 등을 한참 살피고, 좌우 옆으로 와서 또 유심히 살폈다. 그러면서 척추측만이 있으나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있는 것으로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다만 오른쪽 어깨가 왼쪽보다 많이 내려가 있고, 반대로 골반은 오른쪽이 올라와 있다. 게다가 앞뒤로도 틀어져 있어서 몸이 살짝 돌아가 있다고 했다. 또 라운드숄더가 심하고 거북목까지 있어서 전체적으로 몸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음?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많이 하니, 등이 굽은 라운드 숄더와 거북목까지는 이해하겠지만 오른쪽 어깨가 내려가 있다고?' 사실 설명을 듣고 있지만, 거울에 비친 내 어깨의 높이는 지극히 정상으로 보였다. '골반이 틀어진 건 오른발이 5cm 뒤에 있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어깨와 반대로 골반 높이가 다르다면, 지금 내가 짝다리 짚고 있다는 건가?' 도대체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이런 표정을 읽었는지, 트레이너 선생님이 "지금은 잘 모르시겠죠? 앞으로 같이 운동하다 보면 아시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심각해지지 말고 운동 시작할까요?" 괜히 덤볐다가 운동 너무 힘들게 시킬까 봐 걱정돼서, 그냥 인정하는 척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기초체력이 약하고, 근육량도 부족해서 일단 버피, 스쾃 등 기초체력 운동을 시작했다. 바로 쓰러졌다. 토할 것 같고, 하늘이 노래졌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어지러워서 겨우겨우 기는 것 밖에 못했다. 첫날이라서 살살했는데도 갑작스러운 운동에 저혈당 쇼크가 온 것 같다고 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급하게 자기 카스텔라와 사이다를 먹였다. 그렇게 천천히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 저질체력이 맞긴 하구나! 바로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운동했다. 몸무게는 두 달여만에 5kg이 넘게 빠졌고, 특히나 인바디 측정결과 근손실 없이 지방만 빠져서 아주 좋은 결과라고 했다. 그렇게 점점 가슴, 허리, 엉덩이, 이렇게 몸에 구분이 지어지면서 다시 거울 앞에 서게 됐다. 이번에는 확연히 오른쪽 어깨가 내려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 똑바로 서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나의 포즈는 짝다리였다. 자기 뒷모습을 자기가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살이 쪄도 뒷모습은 상당히 정확히 체형을 볼 수 있단다. '그래서 첫 상담 때 뒷모습을 유심히 본 거구나...' 그렇게 몸무게를 빼고, 지방을 덜어 내고, 붓기를 비워내니 비로소 보였다. 그동안 살에 가려져있던 내 앞모습이 빼고, 덜어 내고, 비워내니 드디어 참모습을 드러냈다. 미니멀리스트들이 왜 자꾸 버리라고 하는지 이해가 확 됐다. 많으면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사람의 기억은 자주 쓰는 몇 가지만 남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오래 묵은 데다가 많으면, 많은지도, 묵었는지도 알 수 없고, 결국엔 그런 게 있었는지 조차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필요 없는 건 빼자. 필요한 양만큼만 남기고 남는 것은 덜어 내자. 필요한 적이 언제였더라 하는 것은 비워내자.


구부러진 철사를 똑바로 펴겠다고 반대로 구부리면, 다른 약한 부분이 구부러져 결국 구불구불해지는 것처럼 한번 비틀어진 체형은 어떻게 해도 고칠 수는 없다고 한다. 구부러진 철사를 펴는 유일한 방법은 앞뒤에서 똑바로 잡아당기는 방법밖에 없듯이 의식하고 몸을 똑바로 쭉 펴고 바른 자세로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이 노력에 비하면 빼고, 덜어 내고, 비우는 것은 양반이다. 똑바로 서려면 이것부터 하자. 그나마 쉬운 일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