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왼쪽, 오른쪽’ 혹은 ‘왼손, 오른손’.
어딘가에서 누군가로부터 방향 틀기를 요청받거나, 손 내밀라는 요청을 받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즉각 즉각 반사적으로 잘 반응하는 것 같은데, 나는 가끔씩 틀린다. 이상하게 ‘어! 왼쪽? 오른손?’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요청자가 내 반응을 기다리느라 본인이 할 일을 못하고 있겠다는 미안한 마음에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라는 심정으로 아무 방향으로 틀거나, 아무 손이나 내밀다 보니 가끔씩 틀린다. 아마 비슷한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발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건 진짜 병일 수도 있겠다.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 요청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는 틀리지 않는다. 그럴 때는 나도 반사적으로, 생각 없이, 뇌를 거치지 않고, 본능적으로 바로바로 반응한다. 문제는 마주 보고 있을 때 발생한다. 마주 선 요청자가 나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하면서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올리면 뇌가 관여한다. ‘어? 왜 오른손을 올리면서 왼쪽으로 가라고 하지?’ 이런 생각이 요청과 반응사이에 끼어든다. 앞에 있는 사람이 오른손 내밀라고 요청하면서 자신의 왼손을 뻗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는 이런 간섭이 특히나 심했는데, 커가면서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틀리는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마도 왼손잡이 버릇을 고치면서 심해졌던 것 같다. 본능을 억누르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된다는 의식이 생겼다. 그래서 아직도 조금은 내 기준으로, 내 행복만 생각하라는 말들은 뇌를 한번 더 거치게 된다.
얼마 전 부모님께 홈쇼핑에서 프리미엄 콜라겐을 선물하면서 특별 행사로 구매금액의 20%를 포인트로 돌려받았다. 워낙 비싼 제품이었고 두 분께 사드리다 보니 포인트 금액이 꽤 모였다. 그래서 평소에 허리가 안 좋아서 살까 말까 고민했던 일명 ‘거꾸리’라는 운동기구를 포인트로 사려고 했다. 포인트가 적립되는 날을 기다렸다가 5월 1일 포인트가 적립되자마자 장바구니에서 결재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손가락이 멈췄다. 갑자기 포인트로 내 것을 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꾸리 샀다가 효과 없으면 어쩌지? 실물을 본 적도 없고, 사용해 본 적도 없는데 샀다가 돈만 날리면 어쩌지? 운동기구는 결국에는 다 옷걸이로 전락한다는데...‘ 점점 안 사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래. 이 금액이면 콜라겐 두 달치를 더 살 수도 있겠는데? 어린이날 조카한테 장난감을 사주는 게 나을 것 같아...‘ 또 생각은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갈팡질팡.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계속했다. 포인트는 사용기한이 있어서 이번주 안으로 써야 한다. 포인트가 들어온다는 말에 아무 고민 없이 ‘잘됐다. 사려고 했던 거꾸리 사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결재 직전에 병이 도졌다. 부모님께 전화해서 포인트로 콜라겐 두 달치 더 살 수 있는데 그냥 내 거 사겠다는 허락을 받고, 동생네 카톡을 보내 어린이날에 안 모인다는 확인을 하고 나서, 내 것을 샀다. 그런데 거꾸리는 아니고 허리가 편한 의자를 샀다. 옷걸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결정적이었다. 지금은 의자가 빨리 도착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다른 팔을 내밀어도 같은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서로 마주 본다면… 지금 어디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등 돌리고 서 있어도 마찬가지다. 등 돌렸다고 꼭 반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 너도 틀리고 나도 틀리다. 기준이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