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것들에 집중하지 말자... 핑계 대지 마!
얼마 전 사건이었다. 집에 비데와 매트리스 등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몇 가지를 렌털로 사용하고 있다. 마침 이번달이 비데 점검을 받는 달이었다. 4월 마지막 주에 카톡이 울렸다. 5월 4일 10시 20분에 점검하러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연휴라서 오래간만에 조카 얼굴 보러 갈까 고민 중이었는데, 카톡을 받고 일정을 조정해 달라고 할까 말까 고민이 됐다. 그러다 이내 '연휴전날 점검받겠다고 하는 집이 적겠지... 나까지 조정해 달라고 하면 연휴에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더 힘들어질 거야... 그래 내가 조금 참고 그냥 해주는 대로 받자...'까지 생각이 발전했다. 그리고 혹시나 부동산에서 갑자기 집을 보러 온다고 할까 봐 걱정도 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그래서 그냥 뒀다. 어린이날 선물만 보내고 남아 있기로 했다.
5월 4일 11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리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 12시가 가까워지는데도 초인종은 여전히 조용했다. 이전에도 약속시간이 지나도 안 와서, 왜 안 오시냐고 전화를 해서 점검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음... 전화는... 당연히 연결되지 않았다. '뭐지? 그만뒀나? 한 번은 실수라지만 또 이러면 곤란한데...' 화는 났지만 2시까지 기다리다가 그냥 포기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컴플레인을 해? 말어?' 생각하다가, 혹시나 교통사고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섣부르게 화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도리어 큰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걱정까지 했다.
연휴가 끝나고 5월 8일 월요일이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해놓고 싱크대를 정리하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5월 9일 14시에 점검하러 오겠다는 카톡이다. '약속을 어겼으면 죄송하다는 사과가 먼저 아닌가? 어떻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이렇게 톡을 보내지?' 화가 머리끝까지에서 10cm 아래까지 났다.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받는다.
"저... 여기 OO아파트 OO동 OO호인데요."
"네! 고객님 안녕하세요."
"방금 내일 2시에 점검 온다는 카톡을 받았는데요..."
"네! 제가 그때 방문할게요. 혹시 안되시나요?"
"그게 아니고요. 4월 마지막주에 5월 4일 10시 20분에 온다고 카톡을 받았는데, 안 오셨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일 방문하겠다고 또 일방적으로 카톡을 날리시면 제가 상당히 기분 나빠요."
"..."
"저도 약속이 있는데... 다 취소하고 기다렸는데 전화도 안 받다가... 이제 와서 또 카톡만 틱 날리면 어떡합니까?"
"아... 그게 아니고..."
"그리고 언제부터 점검일정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카톡으로 날렸나요? 3개월 주기로 점검받는데... 3개월 전에 잡은 일정이 그사이에 어떻게 변했을 줄 알고... 확인도 안 하고 그냥 카톡만 날리시나요?"
"아... 그게 아니고... 제가 4일에는 가족여행을 하던 중이라서 전화를 못 받았고..."
순간, 머리끝 10cm 아래에 있던 화가 머리를 뚫었다. 그래도 일단 한번 꾹 눌렀다. 상대방도 당황해서 할 말 안 할 말 구분 못 할 수도 있고, 속으로 아차 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화 내면 나만 손해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꾹 눌렀다. 그래서 일단은 못 들은 척했다. 그래도 일방적으로 날리는 카톡 통보는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었다.
"저기요. 카톡으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거 하지 말아 주세요. 앞으로 저희 집 점검하는 달이면 사전에 통화로 일정 잡아주세요. 이런 잡음 안 생기게..."
"네! 고객님 죄송합니다. 그럼 내일 2시에 뵙겠습니다."
5월 9일 14시 점검시간이 되었다. 이번에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서 방문했다. 안 그러면 사람도 아니지... 어제 통화내용도 그렇고 해서 내가 지켜보고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점검하는 동안 나는 작은방에 들어가 글을 쓰고 있었다.
"고객님 점검 마쳤습니다. 어제는..."
어제의 화가 아직 덜 풀린 상태라서 나도 모르게 말을 가로막고 내 말을 시작했다.
"네! 어제 통화했듯이 앞으로는 카톡으로 일방적으로 일정 통보하는 거 하지 말아 주세요. 저도 일정이 있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받으면... 사실 그동안 기분이 안 좋았는데 그냥 참고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상대방도 억울한 게 있는지 내 말을 가로막는다.
"고객님 잠시만요. 말 끊어서 죄송한데 제 얘기 한 번만 들어주세요."
"... 네."
나도 말을 끊은 것 같아서 들어보기로 한다.
"카톡은 회사에서 임의적으로 스케줄 넣어놓은 것이 발송된 거고요..."
이분 또 안 해도 될 말을 한다. 이제는 화를 누르기만 하면 안 되겠다 싶다.
"저기요. 그걸 제가 알아야 돼요?"
"네?"
"회사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제가 알아야 돼요? 저한테 5월 4일에 점검 온다고 했는데 안온게 중요하지, 회사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가 알아야 되냐고요..."
"아니 그게 아니고 앞으로 카톡은 무시하시라는 설명을 드리려고..."
"그러니까요. 그걸 제가 알아야 하냐고요. 약속을 어긴 것이 잘못된 거지. 시스템이 잘못된 게 문제인가요?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걸 아셨으면 저한테 카톡 무시하라고 설명할 게 아니고, 회사에 고객들 불편하지 않게 시스템 개선해 달라고 요청하셔야 하는 게 본인 업무 아니에요? 저한테는 약속을 어기고 저한테 손해를 끼친 게 더 중요한데요... 그리고 지금까지 약속 어긴 거에 대해서 사과한 적이 없으신데요..."
"..."
"저한테 카톡이 왔고, 그런데 안 오셨고... 그래서 약속을 어기셨고... 그게 팩트인데요... 가족여행을 가서 전화를 못 받았고... 회사 시스템이 잘못됐고... 이거 전부 다 제가 알 필요 없는 것들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제가 그냥 못들은 척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이미 벌어진 일이라서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공식적으로 화낼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도 상대방 입장이었으면 똑같은 혹은 비슷한 반응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영업이나 영업직군은 나는 절대 못한다. 그리고 그동안 나한테 화냈던 사람들이 어떤 것에 화를 낸 건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듯한 낌새를 잘 알아차린다. 나도 똑같이 그래왔으니까... 실수를 모면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사족을 붙이다가는 대부분 더 망한다. 불필요한 것에 집중하다 보면 그것에 매몰되어 사실(진실)을 못 보게 된다. 간단하다 "핑계 대지 마... 그냥 진심으로 사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