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다에 빠지다. 아니 입수(入水)인가?
불교에서는 인생을 바다에 비유한다. 그래서 중생이 생로병사, 희로애락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으로 비유하곤 한다. 이를 어여삐 여겨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부처로 해탈하지 않고 중생을 구제해 주는 분이 관세음보살이다. 그래서 바닷가에 가면 해수관음신앙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동안 극락정토가 되어주었던 스위트홈을 팔고 이사를 가겠다고 마음먹자 다시 바다에 던져졌다. 조용히 책 읽고 산책하며 욕심 없이 투지를 없애며 평온하게 살았는데, 다시 인생이라는 바다에 던져졌다. 아니 입수했다.
우선 부동산이라는 바다에 집을 던지자 곧 가격이 매겨졌다. 최대한 비싸게 팔아서 더 좋은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욕망의 바다에 입수했다. 부동산은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켜 수수료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가격은 금방 다운되었다. 그렇게 다운된 가격으로 매매계약이 이뤄졌다. 부동산의 부도덕함을 속으로 욕하며 마음의 상처를 추슬렀다. 하지만 이 정도 상처는 약과였다.
잔잔한 표면에 한번 파문이 일자 다음 일렁임은 쉽게 일어났다. 그리고 여러 일렁임들이 겹치면서 물결은 금세 파도를 이루었다. 이번에는 '새 집 찾기'와 '이사'를 준비해야 했다. 부모님과 살림을 합치며 넓은 평수의 새 아파트에 들어가고자 했고, 손 없는 날에 어떻게든 싸고 쉽게 이사를 하고자 하는 욕심의 바다에 입수해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서쪽으로 이사를 하면 안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결국 혼자만 이사하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넓은 평수의 새 아파트는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 전세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사는 짐 빼는 날과 들어가는 날이 다르게 정해져서 보관이사를 해야만 했다. 보관이사는 이사를 2번 하는 비용이 들었다. 그렇게 허우적대도 또 다른 극락정토가 되어줄 '뉴 스위트홈'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하지만 전주의 시골 아파트 판 돈으로는 의정부의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 전세도 얻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고이고이 모셔두었던 퇴직금에 손을 댔다. 그렇게 예금을 해약해서 전세금을 맞췄다. 만기가 11월인, 금리 5.5%라며 신나서 계약했던 예금이다.
새롭게 마련된 전세 아파트는 기존 평수보다 작았다. 그리고 이사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5톤 트럭에 맞춰서 짐을 줄여야 했다. 그렇게 물욕의 바다에서 허우적댐이 시작됐다. 우선 부피가 작고 비싼 것들을 위주로 짐을 추렸다. 그리고 부피가 작고 싼 것들은 정리해서 버렸다. 문제는 부피가 크고 비싼 것들이었다. 우선 주변 지인들에게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모두들 부피가 크고 비싼 것들에는 관심이 없고 부피가 작고 비싼 것들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도 정리되었다. 정말 고마웠던 몇 명에게만 필요하다는 것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중고거래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반값, 다음에는 반의 반값... 그래도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살 때는 몇 백만 원 하던 것들이 중고시장에서는 1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부도처리. 망했어요. 파격할인'같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그래도 남은 것들은 선착순으로 나눠주었다.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이사를 준비해서 그렇게 추리고, 정리하고, 나누는데 한 달 정도가 걸렸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냉장고의 식재료도 다 먹어치우고, 청소를 싹 하고, 전원을 뽑았다. 이제는 정말로 필요한 것들만 남았다. 내일 짐만 빼면 된다는 생각으로 커버도 씌워지지 않은 매트리스에 벌러덩 누웠다. 이불도 이미 이삿짐으로 싸놔서 수건으로 배만 덮었다.
'홀가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다. 한 달간 열심히 정리하고, 팔고, 나눈 것들이 허상 같이 느껴졌다. 내 주변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가 이런 거구나. 어쩌면 진정한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이런 시련을 주셨구나. 그렇게 인생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관세음보살님이 구제해 주셨구나. 그동안 극락정토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고 착각했었구나. 다시 바다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계속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