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살방위, 대장군방위로는 절대 이사하면 안 돼,

북서쪽으로 이사 가면 안 돼! 그런데 의정부는 전주에서 북서쪽인데...

by 철없는박영감

현재 살고 있는 집 매매 계약을 하고 바로 다음날 부리나케 올라가 부동산을 찾았다. 매수자가 되도록 빨리 집을 비워주기를 바랐고, 나도 장마가 오기 전에 빨리 이사를 마치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계산도 있었다. 부모님과 살림을 합치겠다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돈 걱정 없이 기간에 맞는 집들을 보러 다녔다. 신축 아파트도 보고, 브랜드 아파트 보고, 역세권 아파트도 보면서, 나도 엄마도 힘든지 모르고 희망에 부풀어 신나게 다녔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풍선에 희망을 너무 세게, 너무 빨리 불어넣었는지 생각지도 못한 바늘에 찔려 뻥 터져버렸다.


계획은 이랬다. '연휴 전에 집을 계약하고, 가장 빠른 손없는 날을 택해서 이사를 하자.' 그렇게 이사를 할 수 있는 날이 6월 7, 8일이었고, 마침 손댈 필요 없는 비어있는 집이 있어서 다음날 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사가 문제인데, 날짜가 촉박해서 부동산에 도움을 청하니 연계되어 있는 이삿짐센터를 연결해 주었다. 손없는 날은 이사가 몰려서 빨리 마감된다는 말에 계약금 20만 원을 우선 걸었다.


올초 이사 얘기가 나올 때부터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절에 가서, 이사 가면 안 되는 방향 물어볼게." 그때는 '무슨 미신을 아직도 믿어?'라고 한 귀로 흘렸는데, '손없는 날'을 찾는 나도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응? 알아본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라는 생각이 들며 뭔가 '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래도 미신 따위 그냥 안 믿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뒷 일은 모른 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다. 다음날 집주인과 부동산에서 만나기로 시간 약속을 잡고, 집에서 느긋이 TV를 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에 아버지가 찍힌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북서쪽으로 절대 이사 가면 안 된데..." 다급한 목소리다.

"예? 전주에서 의정부로 이사 오면 당연히 북쪽인데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절에서 절대로 이사하면 안 된데..."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내일 계약하기로 약속했는데요? 이삿짐센터 계약도 했어요!"

"아! 글쎄! 절대 안 된데... 내년에 이사해야 된데..."

아버지의 목소리는 벌벌 떨리다 못해, 격앙되기 시작했다. 나도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순간적으로 신경질이 났다.

"뭐 그런 게 있어요? 집도 팔렸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죠? 어떻게 하면 되는지 한 번 물어보세요?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이사해요!"

"안된데... 절대 안 된데... 안된다는 걸 어떻게 하냐? 그런 소리 듣고 어떻게 이사를 해? 가뜩이나 너 몸도 아프다고 하는데..." 그리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와! 거의 20년 만에 욕을 할 뻔했다.

'뭐지?'

머릿속이 멍해졌다. 일단 TV나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맛있는 거 해 먹자고 장 보러 가신 엄마에게 얼른 사실을 알리고, 부동산에 약속 취소 전화를 했다. 이삿짐센터에는 이사 날짜가 바뀔 거 같다고 얘기를 해놓고, 날짜 정해지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잠시 뒤 엄마가 헐레벌떡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어딘가에 알아보는 중이신지 전화는 계속 소리샘으로 넘어갔고, 엄마는 절에 아는 분들을 총동원해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나는 너무 속상하고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이사를 하냐 마냐 할 정도로 중요한 거면 그동안 뭐 하고 이제 와서 그러는 거예요? 그동안 이사 안 올 거냐고 그렇게 타박했으면서..."

나중에는 허탈해지며 헛웃음이 나오더니, 급기야 컨디션이 나빠져 온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워버렸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나서 기운을 차렸다. 그 사이 부모님은 여기저기 알아보셨지만 딱히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위약금을 무는 한이 있어도 절대 이사하면 안 된다고 하시고, 엄마는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고 큰엄마, 작은할머니... 집안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혜를 구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부모님도 앓아누우시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결단을 내렸다. 집은 팔려서 비워줘야 하니, 전주에 전셋집을 얻어서 남겠다고...


그렇게 연휴 하루 전, 다시 전주로 향했다. 대중교통은 이미 매진되어 운전공포증을 무릅쓰고 차를 끌고 내려왔다. 어렵게 내려왔지만 정작 내 몸하나 누일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뉴스에서는 연일 '주택 거래가 실종됐네.., 집값 하락세가 무섭네...'라는 기사를 쏟아냈지만, 가격이 적당하면 기간이 안 맞았고, 기간이 맞으면 돈이 부족했다. 부동산 앱이나 인터넷에서 집값시세를 검색하면 연일 '신저가'라는 문구가 올라왔지만 도대체 누가 그렇게 거래를 한 건지... 거짓말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마도 전세사기가 무서워서 사람들이 아파트 전세로 모두 몰린 것 때문인 것 같았다. 뉴스에서 남일 같이 보던 '전세사기'가 이렇게도 나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결국 몸살이 났다. 그렇게 '부처님 오신 날'연휴 기간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행인 것은 엄마가 절에 가서 스님을 만나고 오셔서 문제가 해결됐다. 북은 대장군방위이고, 서는 삼살방위라서 이사하는 것은 절대 안 되지만 절에 불공을 드리고, 날짜를 잘 맞추면 이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순간 심청이의 공양미 삼백석이 생각났다. 그래도 돈으로라도 해결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연휴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이제는 나 혼자만 움직여야 해서, 전세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살림을 합치는 것은 일단 2년 뒤로 미뤄졌다. 전화위복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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