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울 땐 역시 괴담,

납량 특집 : 날씨괴담

by 철없는박영감

이사날짜가 잡히고 나서는 모든 신경이 날씨에 집중됐다. 매일매일 시시각각 포털사이트에서 날씨를 점검했다. 유튜브에 떠도는 날씨괴담을 처음 접했을 때는 '비 맞으면서 이사할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반포기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기술로 정확한 일기예보는 2주가 한계라는 말에 작은 희망을 걸고 열심히 이삿짐을 정리했다. 다행히 장마가 6월 27일 이후에나 남부지방부터 시작된다는 6월 날씨예보가 나왔다. 이사날짜는 21일에 짐을 빼서 27일에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북서방향으로 이사를 가는 대신 꼭 그 날짜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으로 절에 시주를 하고 불공을 드렸다.


합격자 발표를 열어보듯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짜잔! '흐림' 다행히 구름모양만 있다. 아마도 부처님 오신 날 연휴에 엄청나게 쏟아붓더니 내릴 비는 그때 다 내렸나 보다. 햇빛 쨍쨍한 거보다 흐린 게 일하기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내심 흐뭇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6월 둘째 주, 셋째 주 수요일까지는 계속 흐림으로 예보가 나왔다. '불공드린 효험이 있네~.' 그런데 셋째 주 수요일 이삿날을 일주일 남겨두고 갑자기 21일부터 전국이 장마권에 들겠다는 예보와 함께 비구름 모양과 강수확률 60%가 화면에 떡하니 찍혀있었다. OTL


사실은 이러했다. 6월 17일에 열리는 법회에 나도 참석해서 불공을 드려야 했는데, 이삿짐을 정리한다고 혼자서 전주에 내려와서 용쓰고 있으니 부모님이 말씀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6월 14일 예보에 비가 내린다고 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서 나에게 법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 17일에 의정부에 갔다가, 다시 21일에 전주에 왔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정이라서 이삿짐센터에 비 내리면 이사 못하는지 물어봤다. 센터 사장님은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날짜 받은 날 안 할 수는 없지 않냐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듯이 대답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비 맞으면서 이사하자고 완전히 포기하고 법회는 부모님만 다녀오고 나는 남아서 이삿짐 정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기도하면서...


전주에서 보내는 마지막주 금요일. 이삿짐 싼다고 계속 집에만 있다가 주택매매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오랜만에 행정복지센터에 나왔다. 해가 쨍쨍해서 그늘에 주차하지 않으면 잠깐만 나갔다 와도 차 안이 한증막이 될 것 같은 날씨였다. '이 상태면 일기예보가 틀릴 수도 있겠는데?' 제발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바라며 준비를 마쳤다. 이제 20일에 관리비 정산하고, 21일에 가스비 정산하면 집 팔 준비는 다 끝난다. 진짜 이사만 남는다. 6월 17일 전주에서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날씨도 체크할 겸, 여기저기 눈도장도 좀 찍을 겸 산책을 나왔다.

처음 출발할 때, 맑았던 하늘이 집에 돌아올 때 즈음에는 약간 구름이 많아지더니 소나기가 자주 내리기 시작했다. 월요일에는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전화가 왔다. 그냥 20일로 날짜를 바꾸면 안 되겠냐고... 결국, 일정은 변경하지 않았다. 이미 담을 수 없는 물이고, 비 맞고 이사할 것을 각오했기에,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부모님이 무슨 일만 생기면 무슨 말씀을 하실지 뻔하기 때문에... 20일에 관리사무실에 관리비 중간정산을 하러 다녀올 때도 비는 계속 내렸다. 그나마 희망은 일기예보에 21일 8시까지는 비예보가 되어있고, 9시에 잠깐 흐렸다가 다시 10시에 비가 내리는 것으로 예보가 되어 있었다. 비가 안 오는 9 시대에 바짝 짐을 내리면 그나마 비를 덜 맞고 이사할 수 있겠다고 위안을 했다.


짐을 다 정리하고 시트도 없는 침대에 수건으로 배를 덮고 누워서 '홀가분'을 느끼고 있는데...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다. 희한하게 포털사이트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고 검색되고 있었다. 스마트폰 기상정보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고 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집 근처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희한하게 생각하며 살짝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깼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그쳐있었다. 하지만 포털사이트와 스마트폰 기상정보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뭐지?' 그렇게 아침까지 비는 계속 내리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와 기상정보에는 비가 오는 중으로 표시된 채로...


걱정이 되었던 이삿짐센터 사장님은 약속시간 보다 1시간 먼저 도착해서 전화를 주었다. 전화 통화만 하다가 실물은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돈에 찌든 돈 괴물일 줄 알았는데, 평범한 인상이었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라며 얼른 시작하자고 했다. 나도 집 앞에 사다리차가 들어올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주차 중인 차주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이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 10시에 부동산에서 마지막 잔금을 받고 돌아왔다. 이삿짐은 전부 차에 실린 상태였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짐을 먼저 보낸 후, 관리실에 주차증을 반납하자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집주인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인수인계를 하고 의정부로 출발하는 순간 갑자가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북쪽을 향해 차를 몰았고, 비는 내 뒤를 따라 북상했다. 이 정도면 괴담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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