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依然),

하다? 해지다? 하게? 해볼까?

by 철없는박영감

부모님 댁과 지척에 살게 되면서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으러 가며 문안인사를 다니고 있다. 마치 조선시대 세자라도 된 듯하다. 새벽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유산균을 챙겨 먹고, 의관을 정제하고, 매일아침 6시에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항상 두 분이서 지지고 볶으며 살다가 아침, 저녁으로 아들이 문안인사를 오니 두 분 사이가 좀 좋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어릴 때부터, 나는 두 분의 감정쓰레기통, 중재자, 메신저 역할을 해왔다. 그 역할에 너무 지쳐서 몇 년간 의절한 듯 살기도 했다. 코로나라는 좋은 핑곗거리도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 지내고, 혼자서 식사하고, 혼자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가 다시 아들, 자식의 역할로 돌아오니 새로운 생각들이 정리될 틈도 없이 밀려들어왔다. 아버지는 80대, 어머니는 70대이지만 아직도 두 분 다 일을 하신다. 두 분이 식사하면서 밖에서 겪은 일들을 말씀하는 것을 듣는다.


새파랗게 어린놈들에게 무시당한 이야기를 하실 때면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어떤 놈인지 얼굴이 궁금해진다. 더운 날씨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고장 난 것들을 고치고, 쓸고 닦고 한 이야기를 하실 때면 이제 일 그만했으면 하는 안쓰러움과 제 몸 돌보지 않고 미련하게 일만 하다가 인생 즐기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죄책감과 짜증이 동시에 밀려온다.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새벽이나 주말에 불려 나가실 때는 걱정되는 마음에 같이 쫓아 따라간다. 이렇게 보낸 지, 약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현타가 왔다.


'의연해져야 한다.' 많이 되뇌지만 쉽지는 않다. '부모님의 인생과 내 인생은 별개이다. 같은 선상에 놓고 공동운명체로 살면 결국에는 나만 상처받는다.' 잘 알고 있는데, 분리... 그게 또 잘 안된다.

'나는 의연하다. 의연해지자. 의연하게... 그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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