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 이제 왔는가? 자네,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건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by 철없는박영감

번아웃 증후군과는 다르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가만히 있고만 싶은 무기력함, 탈진이나 소진과는 전혀 다르다. 눈이 번쩍 뜨이며 '그동안 나는 어디에서 산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분명히 시장자본주의 사회다. 그렇다 무엇이든지 받은 재화와 용역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직접 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전혀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 하려면 자재나 도구를 구해야 되고, 노하우도 전수받아야 한다. 유튜브라는 좋은 전수받을 창구가 있지만, 사실 이것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기 위해선 회선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포기하는 것도 공짜는 아니다. 폐기를 하려면 폐기비용이 들고, 나눔이나 중고거래를 하려고 해도 역시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조용히 세상과 담쌓고 혼자서 유유자적 그동안 쌓인 독소를 빼며 번아웃 증후군에서 탈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현자타임’이 왔다. 정확히는 ‘현실직시’가 더 맞을 것이다.


이사를 하면서, 아니 꼭 이사가 아니라도 집안의 전자제품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서비스를 불러야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A/S기간 내에는 무료라고 하지만 꼭 서비스가 필요한 시기는 그 기간이 지나서 발생한다. 새로 이사하면서 가구나 택배배송이 불가능한 물건을 사게 되면 어김없이 운송료가 붙는다. 택배배송을 할 수 있는 물건들도 일정금액 이상이 아니면 운송료가 붙는다. 운송료를 면제받기 위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무료배송이라는 단어에 속은 것뿐이지, 실제로는 이미 제품가격에 운송료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사는 곳은 공짜가 없는 세상인데... 잠시 잊고 있었다. 한동안 부모님이 ‘이거 가입하면 사은품을 준데...’라는 스팸문자를 보여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개인정보를 팔아넘기는 거라고 조심하라고 누누이 당부했었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70이 다 된 엄마가 아파트 청소일을 시작했다. 은퇴 후 노후자금으로 마련한 작은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했는데, 이것 때문에 의료보험 지역가입자가 되면서 한 달에 내야 하는 의료보험비가 몇 십만 원이 되었다. 의료보험, 관리비 등등 이것저것 떼고 나면 굶어야 할 지경이다. 노후자금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고 한다. 나이만큼 노쇠해진 몸을 이끌고 한 푼이라도 벌려고 이 더운 날씨에 아파트 청소일을 시작하신 엄마를 보면,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계속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빨리 나아서 조금이라도 돈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꿈쩍거려 보았지만 역효과로 일주일을 앓아눕기도 한다. 한적한 시골 생활에 푹 젖어있다가 북적북적한 수도권에 와서 현실을 마주했다. 뭘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다시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The Party i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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