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집에 안 갈래...
집들이를 했다. 동생네 가족들이 찾아왔다. 비가 많이 왔지만 다행히 우리가 이동할 때는 좀 잦아졌다. 아침부터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걷어서 개어 넣었다. 혹시나 홀아비 냄새난다고 할까 봐 페브리즈를 거의 반통을 뿌렸더니 공기청정기가 바로 반응한다. 집에서 음식대접을 하기 힘들 것 같아서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에서 수박과 커피를 대접할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아서 10시 즈음 폭우를 뚫고 '파O바케O'에서 뽀로로 주스와 뽀로로 빵을 사 왔다. 수박은 어제 미리 사서 냉장고에 넣어놨다. 오늘은 유튜브에서 본 대로 색다른 방법으로 수박을 잘라볼까 한다.
1시에 예약한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는 삼겹살과 소고기 숯불구이다. 집 근처에서 놀이방이 있는 고깃집을 검색했더니 여기를 안내해 줬다. 물론 나는 잘못 먹었다가 며칠간 앓아누울 수 있기 때문에 굽기만 하고, 맛만 몇 점 봤다. 다행히 가성비 좋은 식당이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먹는 속도가 줄어들자 조카를 데리고 놀이방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조금 지쳤는지 그물망에 앉아서 큰아빠도 들어오라고 한다.
"큰아빠는 거기 들어가면 머리 쿵해서 안 들어갈래..." 했더니,
허리를 숙이고 들어오면 된다고 한다. 얼른 화제를 돌려야 한다. 디스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젤리를 맛있게 먹고 있길래 큰아빠도 하나 달라고 했더니 5살만 먹을 수 있단다.
"큰아빠도 다섯 살이야. 마흔다섯 살..."
식당 테이블에 앉아마자 어린이집에서 숫자를 배웠다면서 "일, 이, 삼,... 삼십구!"를 내리 읊었다. 삼십구 다음에는 뭐지? 했더니 입을 닫았다. 아빠가 "사십"이라고 하자, 그 뒤로 사십구까지 더 읊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흔다섯'을 이야기했더니 역시나 못 알아듣는다. "큰아빠 사십오 살이라고... 사십다섯살... 큰아빠도 다섯 살이니까 젤리 하나 줄래?" 조카 젤리 뺏어먹게 다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조카도 못 들은 척인지, 진짜 못 들었는지 자리를 피한다.
식당 놀이방에서 뽑기로 3천 원을 뺏기고 겨우 빠져나왔다. 처음에 뽑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큰아빠가 현금을 안 가져왔다고 하니, 조금 있다가 "카드밖에 없다고?"라고 한다. '아... 조카에게 아직 현금이란 말이 어렵구나.' 다시 아이의 언어로 대꾸했다. "응 큰아빠 카드밖에 없어... 할아버지 오시면 천 원만 달라고 하자!" 그렇게 할아버지 천 원, 할머니 천 원, 아빠 천 원을 받고 나서 빠져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와서 뽀로로 주스와 뽀로로 빵으로 일단 환심을 샀다. 그리고 집을 둘러보더니 아주 신났다. 처음 보는 물건들이 많았는지, 책꽂이에 자석 캐릭터들을 이것저것 집어와서 "엄마! 이거 봐! 큰아빠네 책꽂이에 자석으로 이렇게 붙인다?"라며 신기해한다. 기타를 보고는 엄청 흥분한다. 바로 기타에 달려가서 기타를 집어든다. 엄마가 "물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큰아빠한테 허락 맡고 만져!"라고 하자, 수박을 자르고 있는 나에게 와서 이미 기타를 손에 들고 "큰삼촌 기타 만져도 돼요?"라고 묻는다. 기분이 좋으면 혹은 나한테 잘 보여야 할 때면 항상 삼촌이라고 불러준다. 말을 막 시작할 때, 큰아빠보다 삼촌이 더 어려 보여서 듣기 좋다고 한번 이야기했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부모님과 동생은 방 이곳저곳에 이미 누워서 떡실신했고, 시월드의 시아주버니 집에 유배 온 제수씨와 집주인인 나만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도저히 피곤해서 안 되겠는지 권모술수를 부린다. 그냥 집에 가라는 말을 못 하니 조카를 자극한다. "우리 손주! 장난감 사달라는 소리를 안 하네... 아유 의젓해라..." 장난감 소리에 조카는 대문사진처럼 바로 시무룩 모드로 돌변했다. 의자에 철퍼덕 엎어져 장난감 노래를 부른다. 아휴 엄마도 참... 그냥 장난감 사고 집에 가자라고 하면 될 텐데.... 괜히 동생네 내외 쫓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그랬는지 손주를 자극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고 만다. 여자들의 화법 참 무섭다.
어쨌든 이렇게 집들이를 무사히 마치고 살짝 청소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카톡이 온다. 조카가 큰아빠집을 너무 좋아한단다. 그래서 또 가고 싶다고 그런단다. 'ㅎㅎㅎㅎㅎ 언제든지 환영 ^^'이라고 잘 쓰지 않는 'ㅎ'을 다섯 개나 붙여서 카톡을 보냈다. 장난감 사러 가자면서 시무룩하게 드러누운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여운지... 힘든지 모르고 집들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