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린 '나',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나'
"내일 복날인데 삼계탕 어때? 삼계탕은 먹어도 괜찮냐?"
아버지가 저녁에 술 한잔을 걸치고 약간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목소리 상태로 봐서는 내일 기억 못 할 것 같다. 그래도 대답은 해야지...
"안 먹어봐서 잘 모르겠어요. 괜찮은지 아닌지..."
"보양식인데 뭐 문제 있겠냐? 내일 삼계탕 사 먹을까?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한번 먹어보지 뭐?"
아~ 아픈 아들이 걱정되는 것은 이해하지만, 실패하면 그만인 '무한도전!'도 아니고, 먹었다가 며칠을 앓아누울 수도 있는데 '걱정과 염려'라는 미명하에 실험쥐로 취급받는 것 같아서 속상할 때가 많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아는 주변의 지인과 친구들의 반응도 대게 이런 식이다.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먹어봐야 알지...", "사 온(잡아 온) 사람 성의가 있는데 맛이라도 봐라."
먹는 거야 당연히 할 수 있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100% 전가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주는 사람은 (나는 가해자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줬고 먹였으니까 자신의 마음의 짐 같은 것을 조금 내려놨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혼자서 그 짐을 짊어지고 끙끙 앓고, 시련을 혼자 이겨내야 한다.
퇴사하고 약 일 년간 전 직장 사람 몇몇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며 찾아왔다. 술은 절대로 못 마시고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은 양념도 세고, 기름진 것이 많아서 몇 숟가락 먹고 나면 어김없이 다음날 앓아누웠다. 찾아온 사람들은 처음에는 몸이 안 좋으면 먹지 말라고 자기가 다 먹겠다고 해놓고 술이 몇 잔 들어가면 슬슬 음식이라도 조금 먹어보지라는 태도로 바뀌었다. 괜찮다고 먹는 모습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다고 사양을 하지만 혼자서 술을 한잔, 두 잔 비우고 안주를 한점, 두 점 집어먹다 보면, 안 먹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지, 결국 취기에 상추쌈을 싸서 억지로 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래도 건배는 해야지.'라면서 따라놓은 술잔에 '입 대는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로 변하다가 나중에는 한잔정도는 안 괜찮냐고 타박을 했다. 어떻게 술 한잔도 같이 안 마셔주냐면서… 그렇게 상황은 점점 '무한도전!' 분위기로 흘러갔다. 이런 만남은 십중팔구 내 걱정으로 시작해서, 본인 힘든 이야기로 끝났다. 본인 힘든 이야기를 하고 또 했던 것은 아마 필름 끊겨서 기억도 못 할 것이다. 내 걱정에 대한 기억만 남아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시련이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도전이고… 반복되면 몇 번 맞춰주다가 조용히 카톡 차단하고 전화번호를 지웠다. 어쩔 수 없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꼭 포기하지 말아야 할 '도전과 시련'이 '나' 자체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뚱이, 육체가 아니라 삶, 정신,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육체는 가볍게, 정신은 무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위한 도전과 시련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머지는 사실 포기해도 크게 문제없다. 관계도 포기해도 되고, 재산도 포기해도 된다. 자존심도 포기해도 되고, 외모도 포기해도 된다. 이런 것들은 부피만 크고 가벼워서 아무리 꽉 붙잡고 있어도 민들레 홀씨처럼 다른 사람의 입김에 쉽게 날아가버린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진짜 도전과 시련을 잘 수행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은 건강을 챙겨야 한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