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내 탓이오!”,

언제 적 "내 탓이오", 요즘말로 "굿보이신드롬"

by 철없는박영감

퇴사하면서 전 직장과 관련된 전화번호는 모두 수신거부로 설정하고 삭제했다. 가끔 수신거부를 빼먹고 삭제만 해놓은 번호가 있어서 원치 않는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한다.


"네가 퇴사하고 없어서 회사 꼴이 말이 아니다."


이런 말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회사나 주변 사람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늘어놓는다. 이런 통화는 내용도 무의미하고 통화시간도 길다. 간혹 술에 취해 재입대보다 끔찍한 재입사를 하라며 주정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 얼른 대충 끊고 수신거부로 바꿔놓는다. 전화를 끊고 나면 상대방이 너무 후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자기가 힘든 이유가 '내 퇴사' 때문이라고 하고 싶어 한다.


퇴사 고민을 하던 때, 회사나 주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다 보면 항상 ‘이놈의 회사 내가 때려치운다’로 결론을 냈다. 그러면 얘기를 들어주던 상대방은 ‘네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라며 의지를 꺾었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그리고 내가 있어도 잘 돌아간다. 진실은 내가 있어서 더 잘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없어서 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있으나 없으나 회사는 그냥 '잘' 돌아간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 때문에 발생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나’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거기에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초등학교 등하굣길에서 주차되어 있는 차에 유행같이 붙어있는 스티커가 있었다. "내 탓이오". 처음에는 암호 같았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다 차츰 여기저기서 "내 탓이오"라고 하는 말들이 들렸다. 아는 만큼 보인다가 딱 맞았다. 그리고 경험으로 그 뜻을 이해했다. 나의 유년 시절은 '내 탓이오'로 덮인 거짓삶이었다. '너 키워야 돼서, 너희 아빠랑 이혼도 못하고,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았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으며 크다 보니 착한 아이, 말썽 안 부리는 아이, 의젓한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희생하면 엄마가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 마약처럼 점점 희생하는 것에 중독되었다.


'착한 아이'에서 성장이 멈춘 채로 나이만 들어가는 '애어른'이 바로 나다. 나이가 들면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라고 칭찬을 해줄 어른이 점점 없어지면서 멘붕에 빠지다가 불현듯 정신을 번쩍 차린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되돌려보련다.


아이는 착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면 좋은 것은 어른뿐이다. 그 덕분에 아이의 무궁무진한 미래의 가능성은 없어진다. 착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아이의 미래를 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아이는 그냥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면 그만이다. 꼭 어른의 말을 잘 들을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 어른이 진짜 어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짜 어른들은 자기도 하지 못하는 일을 요구하거나, 못 했던 것들을 강요해서 한풀이를 하려고 한다. 회사도 똑같아서 손에 익고 쉬운 일은 선점하고 힘들고 껄끄러운 일들은 떠넘긴다. 자신의 권리만 챙기고, 책임도 안 지려고 하고 의무만 떠넘긴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일은 죄다 떠넘기고 거들떠도 안 보다가 내가 실수를 하거나 일이 잘못되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잔소리를 해대거나 불같이 화를 낸다. 중간보고를 하지 않은 내 잘못이라고…



'내 탓이오’라는 스트레스를 벗어버려야 한다. ‘내가 조금 더하면 주변 사람들이 편하겠지’라는 희생정신도 버려야 한다. 결과의 원인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주변의 나에 대한 평가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내 잘못이라고, 내가 나쁜 거라고 평가하는 者들은 그럴 자격이 있는지부터 의심해야 한다. 세상을 꼭 착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가 잘하면 혹은 착하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만 있으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