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본다. 봄에는 새싹으로 싱그러움이 가득했고, 여름에는 녹음으로 활기가 가득했다. 가을에는 단풍으로 풍성함이 가득했는데… 겨울에는 뭐가 남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봄여름가을처럼 '뭐가 가득했을까'가 아니고 ‘뭐가 남아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딘가 이상하다. 시작부터 잘못됐음을 알아차린다. 겨울나무는 혹독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가지만 남기고 모두 버렸다. 가식을 전부 내려놓고 본질만 남겨놓은 것이다. 그러니 도리어 생명력이 가득하다. 봄이 올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본질을 더욱 단단히 해서 새싹을 틔울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기회만 오면 다시 싱그러움으로, 활기로, 풍성함으로 가득 채울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 생명력이 가득하다.
요즘 나도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힘든 시기이다. 그런데 ‘뭐가 남아 있을까’보다 ‘뭐로 가득할까'를 생각해 보니, 겨울나무처럼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나에게 단단한 가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리고 더 깊이 뿌리를 내려서 바람에 흔들려도 괜찮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없게 단단해지고 있다. 가식은 떨쳐내고 알맹이만 남기고 있다. 그리고 가능성을 열고 있다.
젊었을 때의 싱그러움이 부러워 염색도 하고, 화장도 해보고, 액세서리도 사 모았다. ‘다음 달 월급 들어올 텐데 뭐!’라는 월급의 활기는 홈쇼핑과 백화점에서 카드를 긁게 했다. 사회생활로 알게 된 사람들의 풍성함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인간관계를 관리했다. 이제는 겨울이 왔다. 싱그러움, 활기, 풍성함은 사라졌다. 본질을 탐구해 단단해질 시기이다.
화장대는 점점 간소해지며 쓰지 않는 각종 화장품들이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지만 피부는 전보다 더 좋고 머리숱도 풍성해졌다. 염색을 하지 않아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액세서리가 없어도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다. 도리어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월급쟁이 생활은 나를 팔아서 번 돈으로 시간을 사는 생활이었다. 쉬는 날 가만히 누워 있다가 배가 고프면 배달을 시켜 먹는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집에서 해 먹는 요리가 저렴하고 더 맛있고 건강하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보겠다는 생각으로 OTT 서비스를 구독하지만,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발견한 프로그램에 더 관심이 간다. 지금은 월급 없이도 시간을 들여 가계부를 쓰면서 절약하며 살아보니 정작 생활비는 기존 카드 값의 4분의 1도 안되었다.
인간관계는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매력이 있으면 사람들은 나를 찾는다. 나를 잃어가며 다른 사람에게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생활을 하면 그에 맞게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단단해지자.’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못난 부분들이 부끄럽지 않다. 그냥 인정하고 나니 고치는 것이 더 쉽다. 본질을 찾아가며 조금씩 나은 사람이 돼가는 기분에 점점 행복해지고 훨씬 활기차졌다. 작은 감정들이 모여 어느 순간 내 안에 넘쳐흘러 ‘아!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행복으로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며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간다. 나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람이다. 단단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