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있는 거랑은 다르지
나의 MBTI 검사 결과는 INTJ-t이다. 이 유형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나 종특을 검색해 보며 "원래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런 게 이상한 거 아니야!"라며 펄쩍 뛰는 것을 보니 검사 결과가 맞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동네에 핫해 보이는 새로운 빵집이 생기면 다른 유형들은 같이 갈 사람을 찾거나, 자기가 사 오겠다며 친구들에게 뭐 먹고 싶은지 조사를 하며 빵 맛볼 시간이 늦어지는데, INTJ들은 혼자 가서 얼른 자기 것만 사 먹고 온다고 한다. 가만히 되짚어 보면, 뭔가 눈에 띄어 필요하다 싶으면 남의 눈치 안 보고 혼자 가서 사 오거나, 영화나 전시회도 관심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혼자 가서 보고 오는 스타일이다. 즉, 나는 INTJ가 맞다.
이런 유형은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시간 낭비 등 비효율적인 것을 못 봐줘서 약속이 있으면 그 전날 동선이나 이동시간 등을 모두 체크한다. 나도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적어도 30분은 먼저 도착할 요량으로 타야 할 지하철 시간을 살펴보고 제시간에 탈 수 있도록 입을 옷을 미리 정해두고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까지 밥을 먹고 몇 시까지 씻고... 등등을 대략적으로 정해놓다.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하면 '여유 있는 게 좋지...'라는 생각에 전날 계획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조금 더 일찍 밥을 먹고, 조금 더 일찍 출발해서 계획했던 시간보다 이른 시간의 지하철을 탄다. 결과적으로 30분 먼저 도착 계획이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전 도착이 된다. 그러면 고민하지 않고 약속 장소 반경 몇백 미터 정도를 돌아다니며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파악하고, 어떤 이벤트들이 있는지 점검한 다음 약속 장소에 30분 전에 나가서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오늘 무엇을 하며 놀지' 미리 파악해 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계획한다. 이렇게 글로 써보니 좀 피곤하게 산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계획대로 진행해야 직성에 풀린다는 것은 아니다.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해서 계획이 틀어지면 또 새 계획을 짤 수 있어서 좋아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쫓기듯이 여유 없게 뭔가를 진행하다가 망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순발력이 부족하다고 할까? 임기응변이 좀 약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시간에 딱 맞춰서 뭔가를 진행하지 않았다. 강의실에는 항상 1등 도착..., 리포트 제출도 마감 며칠 전에..., 원서접수도 접수 첫날에...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눈치 보지 않고 진행했다. 내 기준에서는 이런 것이 여유였다. 그래서 가진 것이 많아야 했다.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뭔가 하고자 하면 할까 말까 고민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고 봐야 했다. 특히나 실패는 용납할 수 없었다. 돈이 있는데 절약하는 것과 돈이 없어서 아끼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건강을 위해 뛰는 것과 늦어서 뛰는 것은 에너지를 축적하냐, 소모하냐라는 정반대 결과를 갖는다. 여유는 있었겠지만 여유로움은 없었다. 항상 아등바등, 전전긍긍...
퇴사 후 찾은 것 중에 하나가 여유로움이다. 그동안 경쟁 사회에서 남들보다 낫기 위해 엄청난 소모전을 치러왔다. 여유를 갖기 위해 항상 뭔가를 더 해야 했다. 하지만 여유로움을 잃고 결국 충전을 못 해서 방전된 배터리가 되어 폐기 처분될 지경이 되었다. 여유로움을 찾게 되자, 점점 안정되었고, 중심도 잘 잡을 수 있게 되어 이제는 하루하루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퇴사를 권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떻게든 여유로움을 되찾기를 바란다. 여유가 아닌 여유로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