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질투는 나의 힘! 하지만 내꺼 하자!

by 철없는박영감

어제 쓴 글의 대문사진과 제목을 다시 가져다 쓴다. 처음에는 이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방향을 잃고, 길을 잃었다. 어떻게든 제목과 연관 있는 내용으로 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삼천포로 빠졌다. 그래서 제목을 바꾸고 내용을 수정했다. 글을 쓰다 보면 이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황할 수 있다.


성우공부도 자칫 잘못하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방황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얘기한 남자지망생들이 주인공 역할보다 조연이나 코믹 캐릭터를 선호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할 수 있는데, 할 수 없거나 안 어울리는 영역에 눈길이 더 간다는 말이다. 공채시험 방식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는데, 아역부터 노역, 그리고 내레이션까지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전부 녹음해서 지원해야 하다 보니 all-round 플레이어를 뽑는다고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참고할 모범답안이 있기 때문에 쉽게 따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것 같기도 하고, 만약 옆친구가 기가 막히게 소화해 내는 것을 목도하면 못하면 떨어질 것 같은 절박함 때문에 더욱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인사말에서 이미 50%를 먹고 가기 때문에, 아역을 못해서 혹은 노역을 못해서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즉 변성보다 연기를 잘해야 한다. 다만 내레이션은 인사말과 동등하게 좀 신경 써야 한다.


수업 중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같은 대사가 주어지면 은근히 눈치 싸움을 하고 커닝이라도 당할까 봐 연습을 소리 내서 안 하는 친구도 있다. 앞 순서의 설정이 좋아 보이면 즉흥적으로 설정을 바꾸기도 하고, 물론 잘 될 확률은 매우 낮다. 아예 본인이 연습한 거보다 앞 친구 설정이 더 와닿는다며 허락을 구하고 바꾸기도 한다. 이 또한 성공확률은 매우 낮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연기는 ‘나’에서 출발해야 자연스럽고 발전한다. 좋아하는 혹은 존경하는 성우님을 물어보면,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매력에 끌리기 때문인지, 십중팔구 반대성향의 성우님 혹은 캐릭터를 좋아한다. 이미 있는 것을 다시 꺼내 보인다는 식상함 때문인지 재미를 추구하는 지망생들이 이런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보면 자신의 한계를 깨야하는 지난하고 고된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지고, 흥미가 떨어져 열정이 식는다. 다 잘해야 할 것 같고, 못하면 떨어질 것 같은 간절함도 한 몫한다.


하지만 항상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다 잘할 필요는 없다’이다. 누가 봐도 안 어울리는 것은 어느 정도 최선을 다하는 맛만 보여주고(절대로 못해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맛만'이라는 수준도 굉장히 높다.), 잘하는 영역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굵고 진중한 목소리가 장점인 친구가 비열하고 야비한 캐릭터를 붙잡고 완성도를 높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뭐든지 잘 해내고 싶은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헛수고로 힘을 빼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 에너지를 잘하는 데 더 쏟으면 좋을 텐데, 안 되는 데 힘 빼다가 공채시험을 날리는 지망생들이 많다. 간혹 천재적인 재능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도 잘하는 지망생이 나타나는데, 이러면 모두의 부러움, 질투와 시기를 한 몸에 받는다. 주변에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순작용이 있지만, 본인은 견제와 시기 때문에 지치는 부작용도 있다.


다 집어치우고, 내 것 해야 한다. 내 것 잘해야 한다. 주변 잡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것 잘하면 된다. 남의 것에 눈독 들이지 않고, 자기 것을 소중히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쉬우면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라는 속담도 안 생겼겠지? 아마 지망생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나아갈 강인한 정신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남기며 이번 글을 마친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내꺼 하자! 내가 가진 무기는 ‘나’밖에 없다. Love Yourself!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