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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뭐 했어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by 철없는박영감

성우학원을 다닌 기간만 5년, 혼자서 준비한 기간도 3~4년, 그 뒤에는 팟캐스트 깨작깨작 1~2년. 성우공채시험은 1차도 합격해 본 적 없다. 거의 10년을 넘게 성우지망생이라는 부캐를 키웠는데 "그동안 뭐 했어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아~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몇 년 방황은 좀 했지만, 성실함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성과가 없으니 결국 자기만족으로 끝났다. 성우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다는 소식에 가족과 친구들도 하나 둘 양심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진지해서 말을 못 했지만, 뜬구름 잡는 것 같아서 불안 불안했다고... 그렇게 10년의 노력은 힘든 현생에서 벗어나고 싶은 잠시 잠깐의 일탈로 인식되면서 막을 내렸다.


성우의 꿈을 포기하고 나서 성우지망생 카페에서 고민 상담 글이 올라오면 조심스럽게 실패자의 경험을 건넸다. 그러면서 막을 내린 성우지망생이라는 부캐에 대한 '갈라쇼' 같은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필자 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마침 회사도 관뒀겠다 성우지망생 때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잠시 잠깐의 일탈로 치부된 시간을 그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뭐 했어요?"라는 질문에 이제는 가만히 URL 주소를 전해볼까 한다.


"나 비록 실패했지만, 그동안 이런 거 했어..."


역경을 극복하고 끝내 꿈을 이뤄낸 수많은 성공담 사이에 실패담 하나 정도 쓱 끼워 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기억을 꺼내 글을 쓰다 보니 열정적으로 꿈을 좇던 때가 있었구나... 그래도 생각이라는 것을 많이 하고, 많이 내재화했구나... 어영부영 시간만 흘려보낸 줄 알았는데 그동안 착각하고 있었구나... 그래 이런 적도 있었는데... 추억에 잠겨 스스로 돌아보며 부캐 성장기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완전 포기를 선언하고 미련이라는 것이 남아있었는데, 이 기록들을 통해 진짜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잘 가! 나의 30대. 잘 있어! 성우의 꿈.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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