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Goldberg Variations BWV 988 : Aria
* 부제에 있는 음악과 같이 감상하시면 더 재밌습니다.
https://youtu.be/v8lJhm-i4jA?si=T1nz9xVg-58mXvYU
그 남자가 쌓은 것은 일순간에 무너졌다...
그 남자는 목에 줄을 이리저리 감으며 실랑이하고 있었다. 겨우 맸나 싶으면 짧거나 길었다. 또 길이가 잘 맞나 싶으면 매듭이 헐거웠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매는 것이 힘들었다. 그 남자는 맸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 조금씩 어긋난 톱니를 맞추듯이 어설프게나마 넥타이를 맸었다. 그 남자는 고이 보관하고 있던 정장을 오랜만에 꺼내 입었다. 대학교 졸업식 때 어머니가 해주신 쥐색 정장이었다. 면접 볼 때, 연수원 들어갈 때, 임관할 때 모두를 고려한 맞춤복이었다. 지금은 낡고 허리도, 기장도, 어깨도, 품도 전부 그 남자의 체격을 웃돌았다. 넥타이를 겨우 매고, 머리까지 가지런히 빗어서 가르마를 탔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 남자의 굽은 등과 쪼그라든 어깨가 도드라졌지만 그 남자 옷 중 가장 격식 있는 옷이었다.
청년은 4학년을 마치기 전, 학교 고시반에 들어가게 된다. 졸업이 다가오며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지도 교수님과 선배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1차 시험을 통과했던 이력도 한 몫한다. 고시반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청년은 마음에 든다. 특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아 외롭지 않다. 학교의 지원 또한 든든하다. 하지만 1차 합격 2차 불합격이 반복되고 고시반 연차가 쌓이며 청년은 몸도 마음도 지친다. 게다가 기수 문화 등 고시반 문제가 불거지며 구성원 간 내부 고발도 이어진다. 청년은 본인도 모르게 가해자로 지목된다. 학번이나 나이, 1차 합격 이력 등 자격이 충분하고 생각했는데, 지친 마음의 반작용일 뿐이었나 보다. 청년은 고시반을 나와 새로운 환경을 찾기로 한다.
그 남자는 폭발하는 비참한 심정을 냉정함으로 억눌렀다. 이 고통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 남자가 쌓은 것은 일순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져 바닥에 내 팽개쳐지고 말았다.
소년 앞에 편지 한 장이 놓였다. 그날도 창 밖을 보다가 교장실로 호출되었다. 평소와 다르게 교장선생님 대신 중년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소년은 보자마자 소녀의 어머니임을 직감했다. 분위기가 소녀와 많이 닮아있었다. 어머님은 소년에게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유품 정리 중에 나왔다고 했다. 수신인에 소년의 이름이 있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먼저 개봉한 점을 사과했다. 그리고 그냥 태울까 망설이다가 가지고 왔다고도 했다. 소년은 도저히 읽을 자신이 없었다. 소년은 편지를 받아 품에 넣고 그 방을 빠져나왔다.
그 남자는 서툴지만 최대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그리고 이제는 희미해진 다짐을 따라 길을 나섰다. 그 남자가 걷고 있는 길은 도시설계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졌으리라. 그 남자가 살고 있는 세상도 마찬가지로 어느 위대한 의지의 치밀한 구도에 의해 스케치되고 채색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남자는 위대한 의지의 작품에 완전무결한 완성을 위해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노을을 향해 길을 걷는 그 남자의 뒷모습은 의연했다.
그 남자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변주곡이었다. 단순히 즉흥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정교한 구도 속에서 작곡된 「바흐 Goldberg Variations BWV 988 : Aria」처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