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 Gymnopédies No.1 (Lent et douloureux)
* 부제에 있는 음악과 같이 감상하시면 더 재밌습니다.
https://youtu.be/M9XPfymOx3Q?si=Q81RG-h41B01v1gG
그 남자는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나지 않게 침구를 정리하고 세면도구를 챙겨 공용 화장실로 향했었다.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목과 귀 뒤도 깨끗이 씻었다. 나이 들면 나는 냄새 대부분이 귀 뒤만 잘 씻어도 안 난다는 말을 듣고나서부터 그 남자는 꼭 잊지 않고 잘 씻어 왔었다. 조그만 실수에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남자를 질타하는 '포스트잇' 수십 개가 붙어있을 것 같았었다. 그 남자는 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도 모범수가 되려고 했었다.
'사뿐사뿐, 살금살금, 조심조심, 신중하게...'
이 선량한 단어들이 그 남자를 옭매어 공격했었다. 어떻게 보면 어제의 결정은 단순히 흔적 지우기에 불과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은 장남이다. 집안의 희망이고 등불이다. 집안의 모든 일이 청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린 동생들은 장남만 위하는 집안 분위기에 반항심도 생기지만, 철이 들며 청년이 지고 있는 타이틀의 무게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갑자기 살갑게 구는 것이 어색해서 모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응원하고 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온 가족의 응원을 등에 업은 청년은 죽을힘을 다해 공부에 전념한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고 싶고, 동생들과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꼭 갚아야 하는 빚을 진 기분이다. 청년은 가끔씩 본인도 모르게 이 압박감에 먹혀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참고 또 참으며 그렇게 노력하면 꼭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청년의 희생은 가족들의 희망이다.
그 남자는 성공하기 위해, 먹고 자는 시간도 아꼈다. 2, 3년 정도 해보니 할 만하다 싶었다. 그러다 병을 얻었다. 그 남자는 이번 전장(戰場)은 단거리 경주가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시간 맞춰 밥 먹고, 운동하고, 잠자며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병이 호전되고 그 남자는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깰 수 없는, 깨서는 안 되는 철칙이 늘어갔다. 그 남자는 철칙이 깨지거나, 훼방꾼이 나타나면 예민해졌다. 처음에는 지키기 위한 방어벽을 쌓다가 나중에는 쫓아내기 위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후에는 미리 차단하고 예방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절실함은 점점 예리한 칼날이 되어갔다.
소년은 점점 껍데기만 남았다. 고상하고 품위 있던 신비한 분위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소년의 어둠은 주변도 빛을 잃게 했다. 시간도 멈춘 듯했다. 학교 수업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었다. 소년의 시선은 자주 교실 창밖을 향했다. 소년은 바다같이 깊고 푸른 하늘을 보며 그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묘한 충동을 느꼈다. 파도가 일으킨 물거품 같은 구름을 보고 있으면 철썩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교실 창밖으로 나가 하늘로 뛰어들면 시원할 것 같았다. 흐릿한 정신이 맑아질 것 같았다.
'어! 이런 생각을 예전에도 했었나?'
소년은 묘한 데자뷔를 느꼈다.
'언제였지? 언제... 였더라...? 언젠가... 하게 되려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며 교실문이 열렸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소년은 이 묘한 데자뷔에서 빠져나왔다. 소년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교장실에 불려 가는 횟수도 잦아졌다.
그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방을 나섰다. 일거리가 왔다는 소식에 작업장을 찾아 할당된 양을 마치고 일당을 받았다. 잠시 관리자와 근황을 나눈다. 늘 똑같은 내용이지만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시간이다. 사실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맙다고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배식소를 찾아 도시락을 받고 방으로 향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반복적인 일상이었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 앞에 멈춰 섰다. 그 남자는 생각에 잠겼다. 그 남자는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남자는 방주인이 뒤처리를 할 수 있게 책상 제일 아래 서랍에 그동안 모은 전재산과 함께 사과의 편지를 넣어놨다. 그 남자는 묘한 데자뷔를 느꼈다.
피아노 학원의 벽을 뚫고 간신히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사티 Gymnopédies No.1 (Lent et douloureux)」의 느리지만 신비롭고 단순한 코드는 몽환적인 여백이 많아 그 남자를 더 생각에 잠기게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