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녹턴 in A-Flat Major, S541"사랑의 꿈 No.3"
* 부제에 있는 음악과 같이 감상하시면 더 재밌습니다.
https://youtu.be/g6IHZOS--bY?si=Rio-NgEyBlYSLnis
그 남자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햇빛이 그만 자라는 듯이 그 남자의 눈을 간지럽히다가 이제는 그 남자의 뺨을 쨍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눈을 감은채 아프지 않은 그 감촉을 즐겼었다. 새벽이면 일어나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죄책감으로 눈을 뜨던 그 남자였다. 평생 일요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었다. 아니 어쩌면 매일이 일요일 같은 삶을 살았었다. 그래도 이번 한 번만 그 남자는 특별히 일요일이라고 하고 싶었었다.
1989년 청년은 대학교 4학년이다. 올 해가 지나면 졸업이다. 작년 세계적인 행사로 어수선하고 들뜬 분위속에서도 1차 합격이라는 성과를 이뤄낸다. 3학년을 다니며 경험 삼아 준비한 시험에 통과하고, 휴학을 해서 2차 준비를 할까도 고민하지만, 학교도 늦게 들어왔고 학부 공부를 하면서도 합격을 해냈기에 문제없이 해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다르다. 청년은 막막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야 하나? 공부에 더 집중해야 하나?' 막막함만 더해질 뿐이다. 집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 청년을 믿는다는 말 뿐이다. 하지만 취직 얘기를 꺼내면 부모님은 화제를 돌린다. 결국 청년은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만 재확인한다.
그 남자는 이제 안정적인 일자리는 꿈꿀 수 없었다. 병이 점점 많이 그리고 자주 찾아오면서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지금은 근처 사회적 기업을 찾아 부정기적인 일거리를 받아하며 일당을 받고 있다. 사회 취약계층 지원제도의 덕을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일을 마치면 일주일에 몇 차례씩 무료로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아 방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있는 피아노 학원 앞은 그 남자의 정규코스였다. 벽을 뚫고 간신히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굽은 등이 펴지고 눈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지금 듣고 있는 이 소리를 꿈에서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남자에게는 꿈도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
소년은 남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긴 손가락의 유난히 크고 하얀 손은 소년에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또래 친구들도 고상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소년을 자신들과는 다른 부류로 취급했다. 소년에게 경외심을 느끼는 친구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전교 1등을 하는 우등생이었고, 다정하진 않지만 믿음이 갔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들도 그런 소년의 분위기에 압도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늘 소년의 생활지도는 교장 선생님 몫이었다. 학교의 기대까지 더해져 소년에게는 또 하나의 고달픔이 추가되었지만 소년은 익숙했다. 그런 소년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온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성격도 쾌활했고 동년배 남자아이들과도 거리감 없이 지냈는데 소년도 그중 하나였다. 소녀 앞에서는 소년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졌다. 그런 해방감이 소년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소녀는 피아노 앞에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소년은 소녀의 피아노 치는 모습을 특히 사랑했다. 소녀의 피아노 치는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질 듯 희미했지만, 힘이 있는 소리는 절대 잊을 수 없어 환상 같은 마력이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꿈속에서라도 꼭 들려주고 싶은 연주가 있었다. 소년이 음악선생님께 부탁해 방과 후 학교가 비면, 남아서 조금씩 연습을 했던 그 곡이다. 꿈에서 깨기 전에 얼른 연주를 시작해야 하는데, 들려줄 상대방이 기다려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아쉬웠지만 결국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꿈에서 울었나 싶을 정도로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어제의 내면의 폭발에 이어 아침에도 놀랄 일들 뿐이다.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에 피아노 연주를 해본다.
「리스트 녹턴 in A-Flat Major, S541"사랑의 꿈 No.3"」 언젠가는 꼭 들려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