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닭, 쪼고 쪼이는 운명
비판 : 1 비평하고 판단함. 2 잘잘못을 들어 따짐. / 비난 : 남의 잘못이나 흠을 책잡아 나쁘게 말함. [출처 : 민중서림 엣센스 국어사전 제6판]
비판(批判)과 비난(非難)은 뜻차이가 크지만 '비'자 돌림이라 그런지 곧잘 오묘하게 섞인다. 똑같은 말과 글에, 하는 사람은 비판했다고 하고, 받는 사람은 비난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비판하는 듯 비난을 속에 숨긴 경우 마지막에 꼭 '비난하려는 목적은 아니다'라고 미사여구로 포장하지만, 누가 읽어도 그 속뜻을 알게 되어있는 장치들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기에 모르면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회사에서 지긋지긋하게
매일 아침 출근하면 부서장은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은다. 그런 날은 그나마 좀 점잖은 날이다. 자리로 호출해서 옆에 앉혀놓고 다른 사람 앞에서 비판(잔소리)을 몇 시간씩 하기도 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하면 훨씬 효율적이겠구먼...
어쨌든 이런 회의 시간에 행해지는 모든 일들이 비판(비난)이다. 부서장이 주재한 회의라면 일방적인 호통일 거고, 타 부서와 협업하는 자리라면 일이 잘 풀리면 모르겠지만 진행이 더디거나 취소가 되면 책임전가를 위한 비판(비난)이 주된 내용일 거다. 최악의 회의는 일을 착수하기도 전에 '니 일, 내 일'따지며 나중에 이익만 챙기려는 행태를 보이려는 이들의 모임(회의)이다. 서로 비판(비난)만 하다가 아무 소득 없이 끝난다.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사람을 바꿀 자격이 뭘까? 권위, 학위, 성과, 이력, 학력, 나이, 그것도 아니면 그냥 힘? 연일 강력범죄가 발생하면서, 이에 따른 판결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어김없이 "판새"소리를 하며 악플 폭격이 쏟아진다. 비판하라고 만들어 놓은 댓글기능에 비난 일색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 인간에게 벌을 줄 수 있을까? 신이라면 직접 판단해서 집행까지 일사천리로 신의 이름으로 행하지만, 인간이 내리는 벌은 수사 따로, 판단 따로, 집행 따로, 양형기준제정 따로... 전부 따로국밥이다. 다수의 기준이 동시에 적용되면서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하느니, 무조건 잡아넣어야 한다느니, 촉법을 없애야 한다느니... 비판이라는 미명하에 필터링 없이 짜증을 분출하는 비난이 넘쳐난다.
그럴 수 있어.
다른 이의 신체와 재산에 상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아니 그것들까지 포함해서 세상에는 모든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범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은 피해자나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다. 교통사고만 해도 절대 그럴 리 없을 거라는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타인에 대한 시선을 조금 너그럽게 누그러뜨리고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라고 훌훌 털어버리면 어떨까? 이게 안될 정도면 그때 신고, 민원, 비판(비난)을 해도 되지 않을까? 좀 점잖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럼에도 한 번씩 발생하는 싸움구경은 재밌다. 참전은 하지 않지만 '너도 옳고, 너도 맞다'라는 양시론의 관점을 갖는다. 박쥐라고 비난(비판)을 듣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모든 비판의 가장 중요한 마무리는 반성이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반성은 잘못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을 지켜본 사람 전부가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쌈닭
쌈닭 : 투계용으로 개량된 전형적인 닭의 품종이다. 직립형이며,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민첩한 동작, 호전적이면서 사납고 무차별적인 공격성을 보인다. [출처 : 나무위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디 가나 있다는 '돌아이' 못지않은 캐릭터가 '쌈닭'이다. 알을 낳지도, 그렇다고 육계도 될 수 없는... 물론 생명을 효용가치로 따지면 안 되지만, 그 점을 빼더라도 옆에 두고 싶지 않고, 근처에 가기 꺼려진다. 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내로남불'. 하지만 쌈닭의 운명은 그 굴레에서는 똑같이 벗어날 수 없다. 젊은 에너지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싸움 기술에만 집중하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아침마다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아 스트레스를 푸는 꼰대 부장의 모습으로 늙어갈 수는 없다. 욕하던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그런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