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다회독 (N회독), 불안한 다독 (多讀)
불투명한 미래, 위태로운 일자리
지금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을 포기하고 차라리 쉰다며 아우성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사회 초년생에게 좋은 일자리를 호락호락하게 내주지 않는 법이다. 철밥통 은행권이나, 신의 직장 공기업들은 이미 고위 공직자의 자녀들이 내정되어 들러리 서는 일이 다반사였고, 대기업은 각자도생 하여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에 열을 올렸다. 지금이야 '문송합니다'란 자조 섞인 말이 나오지만, 2000년대에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뚜렷했다. IMF 시절 정리해고 대상 1호였기 때문이다. 대학 동기, 선배들은 각자 경제·경영학 복수전공, 이중전공을 선택하며 전공세탁을 위해 떠났고, 후배들은 MEET/DEET(의치과전문대)를 준비한다며 떠났다.
IMF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사실상 좋은 일자리가 거의 없던 시절, 전역 후에 무엇을 해 먹고살아야 하나 한참 고민했었다. 그중에 정년이 보장되고, 휴일을 지키며, 공짜 야근이 없고, 노후까지 챙겨주는 철밥통 신의 직장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공무원'이었다. 월급이 좀 적은 단점이 있었지만 2003년 당시에는 그나마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던 분야였기에 젊은이들이 대거 몰렸다.
불행한 다회독 (N회독)
전역 후 선임과 안부전화를 하면서 공무원 시험 얘기가 나왔고, 의기투합하여 노량진에 방을 얻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량진에서의 공시생 생활이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공부도 곧 잘했기 때문에 노력만 하면 금방 붙을 것 같았다. 실제 공부를 시작하고 1년 만에 합격권 점수가 나오기도 했다. 같이 시작했던 선임은 여름방학 동안 강의를 듣고 바로 짐을 싸서 복학했다.
7급을 준비했는데, 국어, 영어, 국사는 입시로 공부했던 과목이고, 경제학은 이과라서 그런지 쉽게 점수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문과계열 과목이 애를 먹였다. 헌법은 그나마 쉬운 편이었는데, 행정법, 행정학이 늘 발목을 잡았다. 특히 행정학. 과락 점수도 몇 번 받았고, 항상 평균점수를 대폭 깎아먹었다. 국사도 버거운데 행정학은 학자들과 학파들의 계보 암기 과목이었다. 행정학은 똑같은 책을 3 회독 이상해야 점수가 나온다고 해서 열심히 읽고 또 읽었지만, 행정학 수험서는 2년이 멀다 하고 개정판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독서가 시작됐다. 암기를 해야 함은 물론이고 이해 없는 연대별 사건 나열은 고문이었다.
게다가 새벽 5시 지하철 첫차를 타고 의정부에서 노량진까지 어렵게 도착하면 학원 자습실 자리 맡기 경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늦게 걸으면 자리가 없었다. 겨우 자리를 맡고 학원에서 구매한 식권으로 욱여넣듯이 식사를 하고는 하루종일 앉아서 수험서만 봤다. 행여 작은 소음이라도 내면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자리는 경고 '포스트잇' 세례를 받았다. 무엇하나 행복을 느낄만한 요소가 요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점점 피폐해졌다.
불안한 다독 (多讀)
그렇게 노량진 바닥에 수년간 창창한 젊은 시절을 쏟아부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떨어지기를 수차례... 군가산점 제도 폐지를 원망하며 그곳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교통비, 식비, 학원비를 아끼고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집 근처 공립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서관은 공시생들에게 성지(聖地)인 동시에 유혹의 마수가 도사리는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공부하다가 잠깐 쉴 겸 신문을 보러 열람실에 들어간 것이 실수였다. 도서관을 다니는 목적은 점점 주객이 전도되어 갔다. 읽은 책 권수가 쌓일수록 불안감은 커졌지만 끊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응시한 시험에서 큰 실수를 하고 완전히 공시생 생활을 접었다.
마지막 응시한 시험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배탈이 나서 시험 도중 화장실 실수를 범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중도 포기하고 나왔다. 그 뒤로 완전히 공시생 생활을 접고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되어 운명처럼 다시 노량진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외근을 하며 거래처를 순회하는 영업사원의 업무는 생각보다 힘들고 외로웠다. 한여름 쉴 곳을 찾아 카페를 전전하다가 음료 값도 만만치 않고 단 것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서 찾은 곳이 또 도서관이었다. 휴관하는 날은 만화방. 또다시 불안한 독서가 시작됐다.
당시에 영업사원들에게는 거래처에서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있게 PDA가 지급됐는데, 사실 본래 용도는 위치추적이 목적이었다. 일정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면 경고 전화가 왔고, GPS를 통해 거래처 수십 미터 안에서 방문확인을 눌러야 했다. 이 간격이 너무 길거나 짧아도 관리자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카페에 앉아 책을 보며 쉬고 있다가도, 도서관이나 만화방에 있을 때도, 때가 되면 나가서 방문확인을 누르고 와야 했다. 지금 같으면 사생활 보호라며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그때는 허용이 됐다. 농땡이를 피우거나 건성건성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끈 없는 목줄은 하나씩 달려 있었다.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공부 외의 독서를 하면 선생님과 부모님은 '책 보면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라며 핀잔을 주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다 보니 안 맞는 옷에 몸을 맞추며 '그래도 메이커네'라고 자기 합리화하듯 살게 되었다. 쌀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일을 하며 '그래도 나오는 게 어디냐'라고 역시나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 이제는 벗어나서 쌀을 농사짓고, 밥을 솥에 짓는… 그런 '짓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지 일 년이 조금 지났다.
가벼운 공기로 외형만 키웠던 풍선에 바람이 빠지고 있다. 한껏 부풀었을 때는 조그만 가시에도 금방 뻥하고 터질 것 같아 위태로웠는데, 바람이 빠지니 고무의 탄성 덕분에 웬만한 날카로움은 튕겨낸다. 평생 고객이라고 띄어주며 급여 통장을 개설했던 주거래 은행은 고객 등급을 낮춘다는 통보메일을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내고 있고, 카드사들도 줄어드는 사용실적에 혜택을 축소하겠다는 메일을 보내온다.
뻥 튀기면 간식. 지으면 양식.
'생각을 키운다', '마음을 넓힌다' 글로만... 말로만... 읽고, 듣던 소리에 진심을 담아 다가가 본다. 간식으로 배는 부를 수 있지만 제대로 성장할 수는 없다. 불안하고 불행하게 살지 않기 위해 오늘도 짓는다. 마음의 양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