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자의 엄마 (프롤로그)

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Spin-Off)

by 철없는박영감


"이혼해 줘!"


그동안 세영을 마주하고 있던 것은 은주의 굽은 뒷모습뿐이었다. 세영은 은주가 어떤 표정으로 앉아 있는지 상상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 봤지만,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불도 안 켜진 집안에는 짐을 싼 듯한 커다란 가방도 더해져 있었다. 세영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미안해"


"그런 식으로 넘어가지 마... 진지하게 말할 때는 잘 들어줘..."


은주는 집 안의 무거워진 공기만큼이나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조용히 말하고 있었지만 단호했다.


"......"


"이대로 같이 있어봤자 서로 힘들어질 뿐이야..."


세영은 은주의 바람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도 안 마주치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살아도 좋았다. 있는 듯 없는 듯 공기처럼 죽은 듯이 지내도 좋으니...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만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으라면 꿇을 것이고, 싹싹 빌라고 하면 빌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 넘길 수 있다면... 하지만 지금 세영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만히 문 앞을 지키고 서있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


"왜?"


"오늘 내 생일이잖아 좀 봐줘..."


"이제 너랑 같이 못 살겠어..."


세영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변화가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냥 이대로... 지금 이대로가 더 좋았다. 은주에 대한 사랑은 분명 아니었다. 옆에 두고 괴롭히고, 상처 줘야겠다는 복수심도 아니었다.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


은주는 그대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영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씻지도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딴짓을 하면 은주가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세영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TV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그제야 세영은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소파에 몸을 눕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