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 불가

간결해지기 (2)

by 철없는박영감
왜 그동안 몰랐지?


마우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클릭을 하는데 문득 버튼에 뭔가 기분 나쁜 끈적한 감촉이 느껴지길래 '뭐지?' 하고 쳐다봤더니 새까맣게 때가 찌들어 있다. 흰색 마우스여서 눈에 더 잘 뜨인다. '오 마이 가쉬~ 그동안 내가 뭘 만진 거야~!'


'마우스가 이 정도면 키보드는?'이라는 생각에 키보드를 쳐다보고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주 쓰는 자판 위에 역시 뭔가 끈적한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진다. 다행히 커버를 씌우는 모델이라서 바로 벗겨 핸드워시까지 묻혀 박박 빨았다. '으악! 으악! 으아아아악!'


마우스도 물에 담가서 퐁퐁에 수세미로 박박 닦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살균 물티슈로 문질러 보지만 여기저기 조립 이음새 사이에 끼어 있는 끈적한 묵은 때들은 닦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흔히 더러움을 비유할 때 변기보다 세균이 몇 배 많다는 식의 표현을 쓰는데 아마도 지금 마우스 상태가 그럴 것 같다. '여태껏 저걸 들고 글을 썼다는 거지? 그동안 배 안 아프고 잘 살아온 게 기적이구만...'


물세탁 불가... Dry Cleaning Only


언제부턴가 스타일러를 쓰기 시작했다. 옷장 안에 '물세탁 불가, Dry Cleaning Only'가 늘어나면서부터다. 키보드와 마우스에 때 타는 줄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던 모니터 속에는 키 크고 삐쩍 마른 늘씬한 모델들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해버렸다. '저 옷만 입으면 나도 당장 키 크고 날씬한 거야'.


상상이 개입하자 쇼핑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런 바지는 신발굽이 높아야 하고, 이런 니트에는 진주 목걸이가 필요하고, 진주는 내 탄생석이네... 탄생석을 지니고 다니면 행운이 온데...' 그렇게 상상 속에 살다 보니 수납장이 부족해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점점 다양한 세탁법이 요구되면서 삶이 복잡해졌다.


울샴푸, 중성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 세제종류도 늘어났고 세탁기 돌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특히 집에서 물빨래가 안되고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 옷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경조사나 명절에 어쩌다 입는 정장과 방한용 외투가 세탁소에 맡기는 유일한 의류였는데... 결국 세탁소 갈 비용 미리 '땡겨서' 산다는 자기 합리화라는 꼬리를 스타일러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물론 '옷이 날개'라고 예쁘고 잘 어울리는 옷은 사람을 달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옷은 입고 더러워지면 세탁하는 것이 기본이다. 세탁해도 안 질 정도로 손때가 묻었거나 해어지면 버려야 한다. 간혹 홈웨어 중에 손때가 너무 타서 구멍 나고 늘어나고 냄새가 배어 안 빠져도 '애착'이라는 별명을 붙여 안 버리는 애들이 있기는 하지만...


쓰고, 닦고, 버리는 순환이 안되면 세균이 된다.
빨고 나니 다시 깨끗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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