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이고, 비축하고, 여투고...

간결해지기 (3)

by 철없는박영감
쟁이다 : 물건을 차곡차곡 포개어 쌓아 두다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네...'

'헉! 거의 하나 가격에 2개! 오늘은 23일! 발행일자가 21일인데... 21일의 난 뭐 하고 있었던 거냐...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남은 거 다 사!'


이런 생각으로 유통기한이 26일까지인 저지방우유 1000㎖ 4팩, 남아있는 전부를 사 왔다. '음... 뭐 유통기한 며칠 지나도 냉장고에 보관하면 괜찮다고 유튜브가 그랬던가... 뉴스 생활정보에서 그랬던가... 그랬을 거다' 만약 아니라고 해도 가짜뉴스라도 퍼뜨려서 맞다고 우길 심산이다.


사실 23일에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1000㎖ 우유 한 팩, 950㎖ 두유 한 팩이 들어있었다. 대략 하루에 우유 3~400㎖ 정도 마시니까 얼추 1주는 먹어야 하는 양이다. 그런데 30% 할인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나마 유통기한이 길고 실온보관도 가능한 두유는 당분간 안 먹기로 하고, 유당불내증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 2~3주 정도는 우유만 먹기로 한다.


비축하다 :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갖추어 모아 두거나 저축하다
(1+1은 못 참지...)


그런데... 그런데! 다른 마트에서 두유 "1+1 행사"를 하고 있다. '1+1을 어떻게 참아? 말 그대로 50% 세일인데... 유통기한도 길고 실온보관도 되는데... 사놓은 우유를 다 먹으면 당분간 두유만 먹자'라고 생각한다. '행사가 11월 1일까지니까 오늘부터 부지런히 사다 날라야지...'라는 생각으로 계획에도 없던 돈을 지출한다.


중요한 단백질 보충원 중에 하나인 참치캔. 사재기가 발생할 것 같아서 집에 비축해 놓았는데... '아 그런 게 있었지...!' 지금 글을 쓰면서 존재 사실이 떠올랐다. 역시 유통기한 길고 실온보관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 그리고 당분간 계속 매일 사다 나를 두유는 이런 꼴을 안 당해야 할 텐데... 너저분하게 밖에 나와있는 꼴을 못 보는 깔끔한 성격 탓에 비축분들은 꼭 수납장 저... 깊은 곳에 보관, 방치되다가 잊혀 썩어간다.


여투다 : 돈이나 물건을 아껴 쓰고 나머지를 모아 두다.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쟁이고, 비축하기는 둘 다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세일 상품을 쟁이고 어떻게든 날짜 안에 다 먹어치우겠다고 평소보다 더 먹다가 결국 장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고, '1+1 행사' 상품이라며 안 써도 될 돈을 더 써가면서 '이게 바로 절약이지...!'라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고 자화자찬하다가 까먹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소금도 썩혀 버린 전적이 있다. 물론 양념소금이었지만...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아끼다 똥 된다'. 냉동고 저 안쪽에서 행사상품이라고... 싸다고... 사 왔던 아이스크림이 한 개 튀어나온다. 너무 오래돼서 겉포장이 무색해지게 포장안쪽이 살얼음으로 가득하다. 분명히 하루에 하나씩 간식으로 먹겠다고 사놓고는 덥다고 3~4개 꺼내 먹다가 배탈 났던 그 아이스크림이다. 지금은 대장균을 그대로 얼려놓은 것 같다.


'여투다' 이 낯선 낱말이 본래 살고 싶었던 모습이다. 그런데 낱말이 낯선 만큼 여태껏 이렇게 살지 못했다. 사실 어디 가서 여투며 살겠다고 이실직고했다가는 바보 같다고 놀림받기 딱 좋다. 특히 저축이나 돈을 모아야겠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이 '일단 저축하고 나머지로 아껴가며 살아라!'이다. '여투다'식으로 하겠다고 하면 저축의지를 의심받기 딱 좋다. 그리고 실제로도 남는 게 없다. 도리어 마이너스다.


쟁이든, 비축하든, 여투든 결국은 부자 되겠다는 거다!


요즘 왜소한 사람들이 매체에 나와서 빨리 많이 먹는 자랑을 하는 듯한 행태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거대한 사람들이 나와서 그런 자랑을 하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가진 것을 못 보고, 못 가진 것만 보는 일들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오고 걱정이 앞선다.


남기는 것 없이... 모으는 것 없이... 필요한 만큼만 딱 가지고, 쓰고, 먹고, 버리고, 비우는 것! 부자 되는 것... 성공하는 것... 입신양명하는 것... 상관없이 딱 내 그릇에 맞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물러나고, 비켜서는 것! 결론적으로 간결해지는 것! 요즘은 이렇게 살고 싶다.


그게 나의 정체성이다. '나'다운 삶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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